[광화문] 경제청문회 감상법(이백만 경제부장)
1999/01/18(월) 16:42
경제청문회가 드디어 시작됐다. 국회 「환란규명 국정조사특위」(위원장 장재식)는 18일 재정경제부를 필두로 기관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비록 여당단독에 의한 청문회지만 국민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환란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기업, 금융기관이 피해를 봤는가.
문제는 경제청문회를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이다. 여야간의 정치쟁점화로 청문회의 취지가 흐려져 있는데다 주제 자체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내용이어서, 청문회의 진행도 어렵겠지만 이를 제대로 감상하기도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환란이 극에 달했던 97년12월 어느날 점심시간. 당시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식탁위에 앉자마자 독한 술을 마셔댔다. 『왜 그리 똥고집을 피웠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언했는데…. 너무 답답해 집으로까지 몇 번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모두 허사였어요. 도무지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그만…』. 강경식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원망이었다.
옛 재정경제원 실무책임자의 술회도 의미심장하다.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총리의 정책방향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지 않았던 게 후회스러울 뿐입니다. 항의표시로 사표라도 냈어야 했는데…』. 그렇다. 경제정책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경제청문회를 감상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바로 「정책은 선택」이라는 명제다.
환란은 하루아침에 터지지 않았다. 정책선택의 고비가 많았다. 첫 고비가 97년 1월23일 한보그룹 부도처리다. 고비고비마다 「내가 만약 경제전문가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고 생각해 봐야 청문회를 생산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감상할 때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저런 작전을 쓰지 않았을텐데…」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97년초 환율을 1,000원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환율논쟁) 왜 이를 무시했는지, 금융연구원이 이해 3월 「한국판 멕시코사태」가 터질지 모른다며 대책강구를 건의했을 때 왜 이를 묵살했는지,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 처리는 과연 적절했는지,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S&P사가 10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는 불길한 신호를 보냈을 때 정부는 과연 어떻게 대처했는지, 외국금융기관들이 한국에서 외화자금을 대거 빼내갈 때(9월부터 사실상 외화부도상태) 정부는 어떤 정책판단을 하고 있었는지, 외환위기 발생시 금리와 환율을 대폭 올리는 것은 경제정책의 ABC인데 왜 이를 외면했는지, 재경원과 한국은행이 국가위기상황에서 추악한 전쟁(한은법개정)을 한 진짜 배경은 뭔지…. 그 과정이 모두 밝혀져야 한다.
경제청문회는 기본적으로 정책선택에 대한 「복기작업」이다. 프로바둑기사들은 대국후 반드시 복기과정을 거치며 한수 한수에 대한 평가를 한다. 프로기사들은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기억해 낸다. 천재적 기억력을 갖고 있어서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한수 한수 모두 피를 말리는 고통속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별 고민없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복기가 불가능하다. 청문회 증인들은 환란과정을 정확해 되살려 사실대로 증언해야 한다. 만약 결정적인 고비에서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면 영영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선택을 별 고민없이 했거나(직무유기), 아니면 불리한 증언을 회피하려는 잔꾀(위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의할 사항은 정책결정과정에 혹시 사가 끼었는지 아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책은 선택이지만, 선택과정에 사적인 욕심이나 비리, 정치적 부도덕함이 개재되어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정확한 「환란 기보」를 작성,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환란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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