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뷰] "밀레니엄 조형물 내년 첫 삽"
1999/01/17(일) 18:00
「삶의 터전, 문화의 바탕」을 슬로건으로 내건 99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회가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 첫 발을 내디뎠다. 건축계 원로인 이광노(李光魯·71)조직위원장을 만나 주요 사업의 의미와 그 추진방향을 들어보았다.
-올해 사업계획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국 현대건축 100년」전(8월22일~10월24일 국립현대미술관), 동서양건축문화 비교 국제심포지엄(10월), 아카시아(ARCASIA·동남아건축사협회)국제포럼, 건축문화엑스포(9월28일~10월25일, ASEM회의장 전시실), 「600년 문화도시서울」(12월 서울시립미술관) 등 이벤트는 물론 건축문화교실, 건축문화기행, 내가 가꾼 우리마을 콘테스트 등 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집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벌이는 국제단체인 월드 해비타트의 한국지부와 함께 무주택서민을 위한 집짓기운동에도 적극 참여할 게획입니다. 전국 건축문화자산을 조사, 이 중에서 산업화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필 생각입니다』
-그런 사업들 중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2000년을 맞아 밀레니엄 조형물 기본안을 마련, 내년 1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고건축의 연구논문과 모형, 건축공법 연구서등을 한 자리에 모은 건축자료관 설립도 시급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안적 도시계획안」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신도시 분당이나 일산은 베드타운화했습니다. 인구 20만 규모의 도시로 경제적 자급이 가능하면서도 문화·환경적으로 완벽한 이상적 도시계획안을 수립하겠습니다. 기존 신도시의 대안이자 남북통일에 대비한 작업으로도 볼 수 있지요』
-대중에게 건축문화의 해가 내건 슬로건은 좀 멀게 들립니다. 「삶의 터전」이 되는 건축이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20세기의 사실상 마지막 해인 올해가 건축문화의 해로 지정된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좋은 건축이란 시대의 독창적 예술성과 기능에 대한 합리성, 재료에 대한 실용성이 환경과 적절하게 조화된 것을 말합니다. 진짜 좋은 건축가는 이런 다양한 요소를 총체적으로 감안한 건축을 합니다』
_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건축은 한 마디로 무계획하지 않습니까.우리나라에 좋은 건축물이 거의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밀어붙이기식으로 계획된 서울에는 건축문화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숲에 막혀 한강에서는 서울의 산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장논리에 휩쓸려 무작정 개발했기 때문이지요. 강원도 영월, 경북 경주처럼 자연환경이 빼어나거나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에도 성냥갑같은 고층아파트들이 한 두 채씩 들어서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규제도 너무 많아요. 과도한 용적률, 빡빡한 건축밀도 등 건축관련 법률은 반드시 개정돼야 합니다.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법개정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_그렇다면 이미 지어 놓은 건물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은 영원히 낙후성을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까.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전국 15개 지부에 주거단지 개선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기존 주거단지를 리디자인(Redesign)」하는 방안을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조 속에 진행할 계획입니다. 아파트가 20년 이상 됐다는 이유로 재개발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입니다. 단지미화 및 주변환경 개선을 통해 기존의 잘못된 건축물을 시각적으로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마 올해 행사 중 국민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기획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건설수요의 급감으로 구직난에 처한 건축관계 전문인들의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_새로운 밀레니엄의 건축을 조망하신다면.
『경제 중심의 합리적 건축이 아니라 낭만과 정서가 흐르는 건축이 될 것같습니다. 소재 재료도 토착화하고 자연친화적이면서 부드러운 건축이 되어야 하는데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이위원장은 초등학교 시절 서울 마포구 아현동 근처의 움막집을 보고 『내가 크면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결심을 하고 건축가가 됐다. 그러나 『후회는 없지만 아직 못 이룬 게 너무 많다』는 그는 『이승만정권때도 후생주택이라 해서 나라에서 집을 지어주었는데 경제수준이 나아진 지금에는 주택에 관한한 복지가 오히려 후퇴했다』고 꼬집었다.
박은주기자 jupe@hankookilbo.co.kr
◆ 약 력
▲ 1928년 황해 개풍 출생
▲ 서울대 건축과 및 대학원 졸
▲ 미 뉴욕 I.M. 페이 건축설계사무소 연수
▲ 대한건축학회장, 서울대 건축공학과 교수(56~93년)역임
▲ 국회의사당 어린이회관 서울대규장각 등 설계 서울시문화상, 보관문화훈장
▲ 현재 예술원회원, 서울대명예교수, 미건축가협회(FAIA) 명예특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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