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99년 오페라 초연 봇물
1999/01/17(일) 18:16
국내 오페라무대는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등 몇개의 인기 레퍼토리를 계속 우려먹는 데 익숙하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작품에 도전하기보다는 안전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이영조의 「황진이」등 한국작곡가들의 신작 4편과,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심청」을 비롯해 그동안 외국서만 공연된 작품 등 총 8편이 초연된다.
새로운 오페라가 한 해에 이렇게 많이 무대에 올려진 적은 없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문화예술이 빙하기를 견디고 있는 때라 얼음장을 뚫고나오는 새싹이 더욱 반갑다. 지난해 가을 오페라 페스티벌의 열기에 이어 한국오페라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는 느낌이다.
윤이상의 「심청」은 27년만에 처음으로 그의 조국에 돌아온다. 72년 독일 초연(8월1일 뮌헨 바이에른국립극장. 대본 하랄트 쿤츠, 연출 귄터 레너트, 지휘 볼프강 자발리쉬) 이후 공연된 적이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공연이 추진됐으나 워낙 대작인데다 윤이상이 분단시대의 기피인물로 찍혔던 까닭에 정치적 이유 등이 겹쳐 무산됐다. 이번 공연은 예술의전당이 5억원을 들여 제작한다. 문호근 연출, 정치용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고 배역은 아직 미정이다.
「심청」은 현대음악 기법으로 쓰여진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뚜렷한 선율이 없고 아리아는 말과 노래의 중간 형태로 불리며 한국음악적 요소가 직접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효성 지극한 착한 딸 이야기는 음양철학 등 도교적 세계관으로 꿰뚫은 웅대한 사상의 드라마로 무대에 펼쳐진다. 이를 공연하는 것은 모험이다. 관객으로서도 매우 낯선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오페라단이 제작하는 이영조의 「황진이」는 올봄 서울 초연에 이어 지방을 돌고 2000년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공연이 예정돼있다. 작곡가는 92년부터 작곡에 착수, 작년 3월에 완성했다. 영화감독 이장호가 연출을 맡아 화제다. 원로시인 구상의 대본, 극작가 윤조병의 각색에 뮤지컬 「명성황후」의 무대디자이너 박동우가 가세하고 있다. 황진이역에 소프라노 김영미, 지난해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라보엠」 1회 공연으로 단숨에 스타가 된 김유섬이 확정됐다.
서울오페라 앙상블은 나환자를 돌보는데 평생을 바치고 지난해 세상을 뜬 이경재 신부의 삶을 무대화한 「사랑의 빛」을 초연한다. 백병동 작곡으로 장수동이 연출한다. 국립오페라단은 차범석의 동명희곡에 바탕을 둔 정회갑의 「산불」과,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풀랑의 「테레지아의 유방」을 초연한다. 베를리오즈의 대작 「파우스트의 겁벌」은 예술의전당이 괴테 탄생 250주년 기념작으로 가을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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