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실록 청와대] 비자금은 북방투자자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실록 청와대] 비자금은 북방투자자금?

입력
1999.01.18 00:00
0 0

[실록 청와대] 비자금은 북방투자자금?

1999/01/17(일) 17:18

비자금을 북방(北方)에 투자할 구상을 했다는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법정 발언은 왜 나왔을까.

한영석변호사의 이야기.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노대통령은 구소련의 땅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법정에서 그 말을 듣고 그 때 일을 퇴임후에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영호(文永晧)중수2과장의 회고. 『수사당시에도 비자금의 용도를 물었더니 북방사업에 쓰려 했다고 하더군요. 북방사업이 뭔지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그리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였어요. 용도야 말하기 나름이니까요』

아들 재헌씨도 97년 이에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아버지는 통일비용을 걱정하셨고, 「우리가 만주나 연해주쪽에 투자하게 되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텐데…」라며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물론 기업도 정부도 투자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돈이 있으니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쓸 수 있겠구나 생각하신 거죠』

6공의 북방개발계획은 한·소 수교직전부터 양국의 경협(經協)차원에서 은밀하게 진행됐다. 일명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한·소수교 후인 91년 어느날 청와대.

『각하, 연해주 지역에 한인들을 이주시켜 개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러시아쪽도 호의적입니다』

박운서(朴雲緖)경제비서관이 그간의 경과를 담은 보고서를 올리자 곧 노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박비서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잘 추진해 보시오』

당시 6공정부가 추진했던 북방계획은 러시아 극동지역인 나훗가지역의 보스토치니 항구에서 3㎞ 떨어진 후방에 1000만평을 임대, 경제특구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우선 공단을 조성하고 추후에 농장도 만든다는 것.

박씨의 증언. 『러시아측과 협상은 상당히 진척된 상태였어요. 우리는 평당 1달러에 90년 임대를 주장했는데 러시아는 50년 임대로 맞서다 결국 70년 임대로 양해되었지요. 러시아측에서는 경제특구지정을 약속하는 등 환영하는 입장이었어요. 우리는 95년 100여개 공장가동, 1만명 고용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지요. 몇 몇 기업체들과 여러차례 현장 실사까지 다녀왔어요』

6공 핵심인사의 이야기. 『왜 광개토대왕계획이라 이름붙였겠어요. 처음엔 중앙아시아 한인들을 노동력으로 이용하다가 장래엔 북만주지역의 중국동포,통일후 북한의 노동력까지 활용하면 방대한 한민족 생활권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영종도 신공항 건설,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될 경부고속철건설등도 다 그때 동일한 맥락에서 구상한 겁니다. 다만 영토확장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대외적으로는 비밀을 유지했어요』

그러나 광개토대왕계획은 이후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표류한다. 박씨의 이어지는 증언. 『정치권에서 러시아에 약속한 차관 30억달러의 이자 상환 문제가 논란이 됐어요. 결국 차관도 14억7천만달러밖에 못가고 경협지원도 끊겼지요. 러시아측에서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고 북방개발문제도 차질이 빚어졌죠. 특히 전력과 용수등 인프라 투자비 5억달러를 누가 낼 것인가가 문제였어요. 러시아는 1억루블을 내겠다고 했는데 정부에서는 이자문제로 더이상 재정지원이 어려운 입장이 됐어요. 결국 문민정부에 인수인계 했는데 소식이 없더군요. 아쉽기만 합니다. 그때 투자를 했으면 중국에게 이처럼 맥없이 밀렸을까요』

그러나 실무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김종인씨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추진론자들은 우리가 아시아 중심국가가 되려면 구소련쪽에 진출해야 하고 만주쪽으로 경제권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대통령의 생각도 그랬지요. 하지만 우리경제가 대단한 걸로 착각한 겁니다. 우리에겐 자금여력이 없었고 경제성도 확인되지 않았어요. 결국 머리속 구상단계로 끝난 것이죠』

6공인사들은 대부분 노씨의 법정발언이 광개토대왕계획을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해선 『단언할 수는 없다』며 말을 아끼지만 강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연희동 참모의 이야기. 『당시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큰 그림 한번 그려 놓고 어른 퇴임후에 그거 보고 크게 웃읍시다」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