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논단] 파행정치의 본질
1999/01/14(목) 07:21
새로운 천년이 성큼 앞으로 다가섰다. 그와 함께 세계도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작년에는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금융자본이 도처에서 문제를 일으키더니 올초에는 유럽이 단일통화를 출범하면서 경제권력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은 유럽에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그 와중에 일본은 제위상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컴퓨터가 2000년을 못읽어 대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고 도처에서 기상이변이 벌어지고 있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대처해도 힘들 이러한 문제들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적으로도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도 금창리 문제는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성공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5대 재벌, 공공부문의 개혁과 고용안정도 나라의 새틀을 짜는데 중요한 과제다.
작년에 이어 올해는 우리사회 각 부문에서 개혁이 깊숙이 뿌리내리게 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세계변화에 대처하고 개혁심화를 주도해야 할 정치권이 529호실 사태로 정초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이 일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국민이 아니라 상대당만 보고 싸우는 우리 정치권의 고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야당의원들은 국민을 대상으로 국회정보실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차분히 법절차를 밟아 호소하지 않고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문지킬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지만, 결국 정치사찰이라는 중요한 문제보다는 난입이라는 절차상의 문제를 부각시킬 구실을 주어버렸다.
여당도 국민들에게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과 달리 어떻게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이 정치사찰을 위해 악용될 소지를 없앴는지 아니면 없애려 하는지 확실한 해명이 없다.
이같이 거칠기만 하고 국민이 아니라 상대당만 바라보고 벌이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대체 우리정치의 어디가 잘못되어 정치인들의 구태와 국민들의 실망이 반복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올바른 정체성 상실이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 색깔이 같다.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로 나뉘어야, 경제, 대북정책, 사회문제 등 중요 현안들에 대해 제각기 다른 입장과 정책을 가지고 국민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안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경쟁이 벌어지면, 국민들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참다운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런 풍토에서는 국정과 현안을 위해 꾸준히 연구하는 정치인들이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그렇게 판이 짜여져 있지를 않다. 어느 정치인이 자조적으로 고백하듯 우리의 정치판은 호남과 영남, 또는 지역연합간의 대립이 시작이자 끝이다.
정책이나 이념으로 뭉친 정당이 아니고 지역과 지역보스를 중심으로 뭉친 당이기에 공천권을 행사하는 보스에게만 잘보이면 정치생명은 일단 보장된다.
그러니 금창리, 경제개혁, 실업자, 컴퓨터대란 문제들이 어떻게 되든지 그런 것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기 보다는 「윗분」의 지시에 따라 상대당 의원들의 멱살잡이도 사양치 않는 것이 정치인으로 살아남는 방식이 되고 있다.
이번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고 비분강개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한 국회의원들을 뽑은 사람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선거때 아무리 정책과 공약을 떠들어대도 선거 2~3일전에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지역 중심으로 표의 향방이 뒤집힌다고 어느 정치인은 말한다.
이렇게 보면 국민들은 529호실 사건의 공범자다. 뽑을 때 지역연고를 따라 뽑고나서, 정치는 국민을 위해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년 총선때까지 『내탓이오』를 외치면서 가슴을 쳐야 할 사람들은 바로 국민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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