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과뒤]잘난 정부,불쌍한 국민(홍선근 경제부차장)
1999/01/12(화) 15:35
이젠 그만이다.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지 않아도 된다. 언제 고장날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몰고 다니던 덜그럭거리는 고물차를 새차로 바꿔도 되겠다. 끊었던 애들 학원과 과외도 다시 시작하자. 휴지조각처럼 변했던 주식도 올랐고 국가신용등급이 정상화돼 곧 세상이 종전으로 돌아간단다. 기쁜 일이다. 마냥 길 것같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터널 끝이 이렇게 빨리 보일 줄이야.
사람들이 들떠 있다. 긴가민가 의아해 하면서도 남들이 그러니까, 특히 정부가 공장이 돌기 시작하고 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빨리 오른다니까 고생이 끝났다며 풀어지고 있다. 남따라 강남간다고 돈도 없으면서 덩달아 풀어지고 있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된 이러한 「풀어짐」은 사실 정부가 지난해 9월 썼던 비상카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정부는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우려,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섰다. 돈이 돌지 않아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으므로 통화확대를 계속해도 된다는 논리로 마구 풀었다. 이렇게 해서 돌지 않는 돈이 도처에 있었고 얼마전부터 특히 주식시장에 몰려 금융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제 디플레이션 우려는 가셨지만 그 비상카드는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돈 때문에 모두가 그저 풀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상카드를 거둘 때가 됐는데도 정부는 짐짓 모른 채 방치하고 있다. 그 바람에 국민들의 머리 가슴 등 온몸에 바람이 들고 있다.
기왕 할 수 밖에 없다면 잠수는 어느 정도 길어야 한다. 언제 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벌써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가. 왜 정부는 세상의 어지러움이 끝났다고, 수면위의 난장판이 정리됐다고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잠수를 끝내라고 부추기는가. 정부는 벌써 정치를 꿈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올해를 정치의 해로 보는 시각이 맞나 보다.
구조조정의 얼개가 짜여졌다고는 해도 다 굳지 않은 콘크리트 위에서 벌써 다른 판을 벌이려 하다가는 모든 게 으깨질 수 있다. 또 겪는 정치에 의한 경제 희생이다. 그 와중에 국민들만 고생한 보람도 없이 또다른 난장판을 겪게 될 공산이 크다. 이래저래 국민만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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