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대입논술고사] 서강대(계열공통)
1999/01/12(화) 17:53
다음 제시문은 루신의 「아Q정전」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인공의 사고와 행동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기술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존재로서의 진실한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논술하라.
(가) 아Q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의 노란 변발을 잡아챌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아Q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변발 밑동을 움켜잡고 머리를 비틀면서 말했다.
『벌레를 때린다. 됐지? 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 이제 놔 줘!』 벌레가 되었어도 건달들은 놓아주지 않았다. 전과 똑같이 가까운 아무데나 그의 머리를 대여섯번 소리나게 짓찧었고, 그런 뒤에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초도 지나지않아 아Q도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 경멸을 잘하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 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일인자」이다.
장원도 「제일인자」가 아닌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아Q는 이처럼 여러가지 묘법을 써서 적을 극복한 뒤에는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잔 마시고 또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시시덕거리고 한바탕 입씨름을 하여 또 승리를 얻고,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잠이 들었다. 돈이 생기면 그는 야바위 노름을 하러 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Q는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속으로 끼어들었다. 목소리는 그가 제일 컸다.
『청룡에 사백!』『자― 열어요― 얏!』 물주가 상자 뚜껑을 열고서 역시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읊어댔다. 『천문이군요― 각은 텄고요― 인이랑 천당은 아무도 안 걸었고요―! 아Q 돈은 가져오고요―!』『천당에 백― 백오십!』 아Q의 돈은 이렇게 노래를 읊는 사이에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옮겨갔다. 그는 결국 거기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 서서 구경하며 자리가 파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를 태우고 그런 뒤에 못내 아쉬워하며 사당으로 돌아갔고, 다음날에는 눈이 부은채 일하러 갔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인 것인지, 아Q는 불행히도 딱 한번 이기
기는 했는데 도리어 더 낭패를 보았다.
그것은 웨이주앙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는 날 밤이었다. 그날 밤에는 관례대로 연극을 했는데, 무대 왼쪽에서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노름판이 잔뜩 벌어졌다. 연극판의 징소리와 북소리가 아Q의 귀에는 십리 바깥에서 나는 것 같았고 아Q에게 들리는 것은 오직 물주의 노랫소리 뿐이었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작은 은전으로 바뀌었고, 작은 은전이 큰 은전으로 바뀌었으며, 나중에는 큰 은전이 두둑이 쌓였다. 그는 대단히 신바람이 났다.
『천문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는지 그는 몰랐다. 욕하는 소리, 때리는소리, 발걸음 소리,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그가 간신히 일어나보니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으며, 몸이 여기저기 아픈 걸로 보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몇번 당한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이 이상스러워하며 그를 쳐다 보았다. 그는 넋을 잃고 사당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기의 은전 뭉치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제삿날 벌어지는 노름판은 대부분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니 어디 가서 재산을 찾는단 말인가. 하얗게 반짝이는 은전더미! 더구나 자기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자식이 가져간 셈치자고 해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자기를 벌레라고 해 보아도 역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 -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
(나) 아Q의 귀에도 혁명당이라는 말은 진작부터 들려오던 터였고, 올해는 혁명당을 죽이는 것을 제 눈으로 구경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혁명당은 곧 반역이며 반역은 곧 자기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껏 「깊이 증오하고 극히 원통」해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이 백리 사방에 이름이 높은 거인(擧人) 어른을 그토록 겁먹게 하였으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동경」을 품게 되었고, 더구나 웨이주앙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에 아Q는 더욱 유쾌해졌다.
『혁명도 좋은 거구나.』라고 아Q는 생각했다. 『그 개같은 놈들을 혁명해 버리자.
혐오스러운 놈들! 가증스러운 놈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항복해야지.』 아Q는 요즘 돈이 궁해서 아마 다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빈속에 낮술을 두잔 마셨는지라 더욱 빨리 취해서 한편으로 생각하고 한편으로 걷다 보니 다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어찌 된 것인지 갑자기 자기가 혁명당이고 웨이주앙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포로인것 같았다. 그는 득의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떠들었다.
『반역이다! 반역이다!』 웨이주앙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불쌍한 눈빛은 아Q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자 그는 유월에 빙수를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걸어가면서 고함을 질렀다.
『좋아, …… 원하는 것은 전부 다 내 것, 마음에 드는 여자도 전부 다 내 것. 뚜뚜, 창창! 후회한들 어쩌리, 술김에 잘못 알고 쩡 아우들 목을 쳤네. 후회한들 어쩌리, 아아아…… 뚜뚜, 창창, 뚜, 챙그랑창! 내 손은 쇠채찍을 들어 너를 때린다……』
짜오씨댁의 남자 두 분과 두 사람의 친척이 대문 앞에 서서 혁명을 논하고 있었는데 아Q는 그것도 보지 못하고 머리를 꼿꼿이 쳐든 채 노래를 하면서 지나쳐갔다.
『뚜뚜……』
『라오Q(老Q)』 짜오 노어른이 겁먹은 태도로 맞이하면서 낮은 소리로 불렀다. 『창창,』 아Q는 자기 이름에 「라오」자가 붙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
므로 자기하고는 무관한 다른 말이려니 여기고 노래만 불렀다.
『뚜, 창. 챙그랑창,창!』『라오Q』『후회한들 어쩌리……』『아Q!』 수재가 할 수 없이 직접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Q는 그제야 멈춰서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요?』『라오Q…… 요즘……』 짜오 노어른은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요즘, ……벌이가 좋은가?』『벌이가 좋냐구요? 물론이죠. 원하는 것은 전부……』『아…… 아Q형, 가난한 동무들은 괜찮겠죠……』 짜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것 같았다.
『가난한 동무들? 당신은 나보다 돈이 많잖아.』라고 말하면서 아Q는 가버렸다.
사람들은 낙심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짜오 노어른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 밤에 등불을 켤 때까지 의논했다. 자오바이옌은 집으로 돌아가 허리춤에서 전대를 끌러내려 자기 처에게 주면서 상자 밑에 숨겨 놓으라고 했다.
(다) 『반역이라? 재미있구나,…하얀 투구에 하얀 갑옷의 혁명당이 온다. 청룡도에 쇠채찍, 폭탄, 총, 삼첨양인도, 구겸창을 들고서 사당 앞을 지나가며 부른다. 「아Q」같이 가세 같이 가! 그래서 같이 간다… 그때가 되면 웨이주앙 사람들은 꼴 좋겠지. 무릎을 끓고 부르겠지,「아Q, 살려줘!」누가 들어준대? 제일 먼저 죽여야 하는건 샤오디와 짜오 노이론이야, 그리고 수재도, 그리고 가짜 양놈도,… 몇 놈이나 남겨둘까? 왕 털보는 원래 남겨둬도 되겠지만 그래도 안돼… 물건은,…곧장 들어가서 상자를 열면 원보(은으로 말굽 모양같이 만든 화폐)에 은화, 옥양목 셔츠,…수재 마누라의 영파침대부터 사당으로 옮기고, 그밖에 치앤씨 댁의 탁자랑 의자를 놓고…아니 짜오씨 댁 것을 쓰자. 나는 손대지 말고 샤오디를 시켜 옮기자, 빨리 옮겨야지 안 그러면 따귀를 때릴 테다… 짜오쓰천의 누이동생은 너무 못생겼어. 쪼우치댁의 딸은 젖비린내 나고. 가짜 양놈의 마누라는 변발도 없는 남자랑 잤으니. 흥, 좋은 물건이 아냐! 수재 마누라는 눈꺼풀에 흉터가 있지…우마는 못본지 오래 됐는데 어디 있나 몰라. 아깝게도 발이 너무 크지.』 아Q는 미처 생각을 매듭짓기도 전에 벌써 코를 골았다. 넉냥짜리 초는 아직 반치도 채 타지 않았고 붉은 빛이 그의 벌려진 입을 비추었다.
『어어!』 아Q는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들어 황망히 사방을 둘러보더니
넉냥자리 초가 보이자 다시 머리를 처박고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그가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거리로 나가 살펴보니 모든 것이 다 전과 똑같았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고, 생각해보려 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았고,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정수암에 도착했다.
암자는 봄에도 그랬던 것처럼 고요했으며 흰 벽에 검은 문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해보다가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자 개가 안에서 짖었다. 그는 급히 벽돌 조각을 몇개 집어들고서 다시 좀더 힘껏 두드렸다. 검은 문에 곰보 자국이 숱하게 생기고 나서야 누군가 문을 열기 위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Q는 얼른 벽돌 조각을 움켜쥐고 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검은 개와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암자 문이 빠끔이 열렸을 뿐 검은 개는 뛰쳐나오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늙은 비구니 한사람만 있었다.
『자네 왜 또 왔나?』 그녀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혁명하려고요…알아요?….』 아Q는 아주 모호하게 말했다.
『혁명 혁명, 벌써 혁명했잖아…』 자네들이 우리를 어떻게 혁명한다는 거야? 늙
은 비구니가 두눈을 붉히며 말했다.
『뭐라고요?…』 아Q는 의아했다.
『그 수재하고 가짜 양놈이!』
아Q는 너무 뜻밖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대경실색을 했다. 늙은 비구니는 그의 예기가 사라진 것을 보자 날쌔게 문을 닫았다. 아Q가 다시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고 다시 두드려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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