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 엔고] 일본불황 그대론데… '이상한 엔고'
1999/01/12(화) 17:26
새해 들어 흐름이 뚜렷해진 엔화 강세에 대해 일본내 전문가들은 「얼떨결 엔고」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상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엔화는 11일 런던과 뉴욕 시장에서 110엔대가 붕괴된 데 이어 12일 도쿄(東京)에서도 28개월만에 처음으로 한 때 110엔대가 무너지기도 했으나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다시 약세로 전환됐다.
◆국내적 요인
엔강세의 가장 큰 국내적 요인으로는 일본 통화당국의 일시적인 엔고 방임이 이다. 통화당국이 한동안 환율에 대해 침묵한 것을 「엔고 용인」으로 해석하면서 시장 분위기를 자극한 것이다. 또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든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도 확실한 설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퍼스트 시카고은행 도쿄지점의 나카무라 요지(中村陽二) 외환과장은 『온갖 재료를 무조건 엔고의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마땅한 근거없이 그저 달러당 105엔대까지 이를 것이라는 게 투자자들의 시각』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경제 기초체력이 뒷받침하지 않은 엔화 강세는 시장의 불안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통화 당국의 견제 발언만 나오면 곧바로 달러당 115엔대로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관련, 일본 정부는 12일 외환시장에 개입해 약 10~20억 달러를 매입했다. 일본 당국이 이같은 달러매입은 96년 2월 이래 처음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후지은행 국제자금부 야마다 신지(山田信治) 조사역은 『일본의 시장금리가 상승,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든 데다 주식·채권값 하락으로 엔화가 「위험 분산」의 적절한 투자 수단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내외 금리차를 배경으로 경상흑자를 웃도는 대외투자가 계속됐던 흐름이 바뀌어 자금이 환류하고 있다』면서 『당국의 개입이 없을 경우 며칠새 달러당 105엔대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밖에 꾸준히 늘고 있는 무역흑자나 3월말 결산기를 앞둔 수출기업의 「엔 확보」 움직임 등도 지적되고 있으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현재의 엔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도쿄=황영식특파원
◆국외적 요인
엔 강세는 일본 경제가 튼튼해서라 아니라 달러가 약세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파생적 성격이 짙다. 일본 실물경제에 대해 기대감을 갖기는 아직 이르지만, 달러에 대한 불안심리가 또다른 기축통화인 엔화의 수요증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 경기에 대한 「거품론」과 일본 경기가 이제 최저점을 벗어났다는 「바닥론」이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달러 약세를 초래하고 있는 미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지표로 봐서는 미 경제가 가까운 장래에 침체할 것이라고 볼 아무런 징후가 없다. 9,600선을 뛰어넘은 뉴욕 다우지수는 금방이라도 1만선을 돌파할 기세로 매일 치솟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바로 미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노무라 은행의 수석 시장분석가인 마이클 덕스는 『대다수 미국인들은 미 경제가 장차 내려갈 것으로 느끼고 있다』며 『국제투자가들도 달러화에 대한 매입을 자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는 남미경제의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남미와 미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나 미국의 「보호막」에도 불구, 남미 경제는 매일 추락하고 있다. 브라질 제2의 주(州)이며 산업중심지인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촉발된 브라질 환란은 칠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 금융 동요는 지금 남미 시장을 강타하고 있지만 최종 목적지는 결국 미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로화 출범, 달러 약세, 중남미 금융위기 등이 서로 물고 물리며 엔고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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