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청와대](71) 노태우 비자금사건(4)
1999/01/10(일) 19:28
견디기 힘든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95년 10월 22일 이현우(李賢雨)전청와대경호실장의 검찰출두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이 베일을 벗은 뒤 연희동 캠프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제는 어떻게 하지…』
노씨는 「어떻게 하지」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연희동의 정적이 깨진 것은 25일 오후였다. 정해창(丁海昌)전비서실장과 서동권(徐東權)전안기부장등 6공의 브레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밤 11시 동생 노재우(盧載愚)씨가 찾아왔고 아들 재헌(載憲)씨와 딸 소영(素英)씨 부부까지 포함, 전 가족이 모였다.
연희동 참모들은 여권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이틀간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계속 버티면 두번 죽는다』는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다.
여권일각에서는 TK인사들을 중심으로 「선(先)공개 후(後)낙향」방안도 거론됐지만 곧 수그러들었다. 청와대나 연희동 모두 낙향한다고 해서 한 번 붙은 불이 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김유후(金有厚)변호사의 회고. 『이미 모든게 끝난 상황이었어요. 여러 채널로 알아봤지만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어요. 그쪽(청와대)에서 마음 먹었다면 구속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 아닙니까』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姜三載)의원의 회고. 『당 안팎에서 노씨의 낙향안이 흘러나왔지만 힘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검찰이 물고 난 상황에서 어물쩡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냥 덮는다고 하면 소장검사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여론은 또 어떻게 달랩니까. 안될 말이었지요』
검찰의 압박작전도 계속됐다. 안강민(安剛民)중수부장은 김변호사와 모처에서 2~3차례 만났다. 안중수부장은 그 때마다 자세한 비자금 내역을 요구했지만 연희동은 요지부동이었다.
(안부장)『비자금이 더 없다는 말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지 맙시다. 다 알고 있습니다. 계속 그러다간 정말 큰 망신 당합니다』
(김변호사) 『안부장, 내가 알고 있는 한 그게 전부입니다. 각하가 그렇다는데 믿어야지요』
한 검찰 간부의 회고. 『노씨가 없다고 하니 김변호사도 타협안을 제시할 「거리」가 없었을 거에요. 지피지기(知彼知己)하고 싸움을 해야하는데 처음부터 막히니 백전백패(百戰百敗)할 수 밖에 없지요』
안중수부장의 말은 엄포였을까. 10월26일 오전 10시 대검 중수부장실. 이날 아침 조간신문에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이 추가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실려있었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안중수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동아투금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268억원을 어음관리계좌(CMA)에 관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이태진(李泰珍)경호실 경리과장과 장한규(張漢圭)전동아투금사장등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기자단)『이현우씨는 언제 재소환 합니까』
(안부장) 『(웃음을 못참겠다는 듯) 이전실장은 어젯밤 9시쯤 재소환해 오늘 새벽 5시쯤 돌려보냈습니다. 몰랐죠?』
수사는 기자들의 예측을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날 오후 브리핑. 안중수부장은 비자금총액이 900억원대에 달하고 상업은행 효자동 지점에도 「아름회」라는 차명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계좌추적에 몇개월이 걸릴지도 모른다』던 검찰의 말은 그야말로 「엄살」이었다. 문영호(文永晧) 당시 중수2과장의 회고. 『노전대통령이 1차소환될 때까지 우리가 찾아낸 비자금 잔액이 1,000억원을 넘었어요. 이태진씨가 열쇠였지요. 이씨는 「이호경」(「호경」은 경호실의 「경호」를 뒤집은 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며 은행 몇 곳을 알려주었어요. 우리는 은행에서 인감철을 뒤져 이호경 인감을 쓴 원부를 싹 뒤졌어요. 이호경만 찾으면 노씨의 돈이었지요. 곧 다른 인감도장을 2개 더 찾아냈어요』
검찰의 발표는 연희동을 향해 띄운 최후통첩이었다. 같은 시각 연희동에서는 마라톤 대책회의가 계속됐다. 연희동의 참모들은 심상치 않은 여론의 분위기를 노전대통령에게 전했다. 더이상 퇴로는 없었다.
한 연희동 참모의 회고. 『제가 각하에게 「전두환 전대통령이 백담사에 갔으니 각하는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다져야 합니다」라고 진언 했어요. 사실 노전대통령은 지금도 전전대통령을 구하기위해 백담사로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5공비리 수사당시 사방에서 전씨를 구속하라고 난리였어요. 노전대통령으로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겁니다. 전씨가 첩첩산중으로 「유배」를 갔는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권이 노전대통령을 보낼 곳이 어디겠어요』
운명의 날인 10월 27일 오전 11시. 노전대통령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못난 노태우 외람되게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중략)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동안 약 5,000억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되었습니다…(중략) 쓰고 남은 통치자금은 저의 퇴임 당시 1,700억원가량 되었습니다』
TV로 생중계된 사과성명. 노씨는 좀처럼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이 내리시는 어떠한 심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어떠한 돌팔매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당국에 출석하여 조사도 받겠습니다…(중략) 재삼 국민 여러분 앞에 무릎꿇어 깊이 사죄드립니다』
노전대통령은 「어떤 돌팔매도 감수하겠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눌렀다.
연희동을 지키던 아들 재헌씨와 최석립(崔石立)전경호실장이 남의 눈에 안띄는 곳에서 노씨의 고해성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같은 시각 대검 중수부장실에서도 안부장과 이정수(李廷洙)수사기획관, 문과장등 수사팀이 모여 TV화면에 비치는 노씨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과성명은 검찰에 병주고 약주는 격이었다.
문과장의 계속되는 회고. 『당시 노씨가 재임 중 거둔 돈이 한 2,000억~3,000억원 정도 될 걸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덜컥 5,000억원을 걷었다고 하는 거에요. 한 3,000억 정도면 지금까지 찾아낸 것으로도 충분히 요리할 수 있을텐데 5,000억이라고 이야기하니 이걸 어떻게 다 찾아내고 일일이 조사를 하겠어요. 비상이 걸릴 수 밖에요』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국민여론은 진정되기는 커녕 성토 일색으로 악화됐다. 검찰총장실과 중수부장실에 『노씨를 구속하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검찰내부 분위기도 『노씨를 구속하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지겠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연희동은 30일 검찰에 비자금이 내역이 담겨있는 통장등 소명자료를 제출,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무릎을 꿇었다.
노씨의 사과성명은 얼마나 솔직한 것이었을까. 연희동 참모들은 『당시 숨길것이 뭐가 있었겠느냐』며 『모든 것을 다 밝혔다』고 말한다. 그러나 검찰이 찾아낸 비자금 잔액은 2,700억원 가량. 연희동이 밝힌 1,700억원(소명자료는 1,857억원)과는 이자소득을 계산하더라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안강민중수부장의 회고. 『노씨는 예금통장은 전부 제출했다고 봅니다. 대우와 한보에 맡긴 돈도 포함됐지요. 하지만 부동산과 쌍용그룹에 맡겼던 돈은 빠져있었어요. 쌍용 돈은 우리가 계좌추적을 통해 밝힌 것이지요』
사과성명은 미국·캐나다 순방 중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귀국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연희동은 왜 YS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서동권씨의 이야기. 『청와대와의 타협이니 하는 것은 비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죠. YS가 어떤 사람입니까. 대통령이 된 뒤에 연희동에 전화 한 통 안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차하게 매달릴 상황이 아니었었요. 사과성명도 그래서 YS의 귀국 전에 한겁니다. 성명에 보면 모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지요. 우리는 어차피 그렇게 갈 줄 알았기에 그런 문구를 쓴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6공인사의 말은 더 직설적이다. 『노전대통령은 상당히 치밀한 사람입니다. 이미 시나리오를 짜놓고 터뜨리는데 저쪽에서 칼을 뺐으면 열번쯤 휘두르지 한번으로 멈추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물론 국민들과 참모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도 컸겠지요』
YS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김기수(金基洙)전청와대수행실장의 회고. 『대통령은 비자금이 1,000억원대를 넘어설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호텔을 나오면서 「기수야, 정경유착을 끊어야 겠제…역사도 바로 잡아야 해… 그래야 겠제」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다음날(27일) 하와이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이번 사건을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실감케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선언했어요』
10월 28일 오후 미국 방문을 마친 김대통령이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영접나온 각료들 사이에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도 눈에 띄었다. 의례적인 악수가 오가다 김총장의 차례가 됐다. 김대통령이 김총장의 손을 꼭 잡더니 조용히 말했다. 『김총장, 수고했어』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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