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부드러운 전교조
1999/01/07(목) 17:34
음지가 양지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이 말들은 모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말하는 속담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도 비슷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오래도록 영어의 생활을 하던 반체제 시인이 풀려나 공영방송의 대중 프로그램에서 시를 낭송하고 재야운동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 교육부 산하단체 간부로 임명된 근래의 일들을 말할 때 이런 말들을 곁들여 의외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교조 합법화보다 그 말들의 쓰임새가 적절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전교조 합법화를 규정한 법률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의원들이 몸을 던져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가운데 법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지난 시대를 돌이키지 않더라도 여당이 노조 양성화를 위해 국회를 변칙운영한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변이다. 전교조가 야당 규탄집회를 열고 강렬한 어조의 비난성명을 낸 것도 노동운동사에 유례 없는 일이다.
■1960년 4·19 교원노조 이후 38년, 89년 전교조 결성이후 10년만에 법제화라는 숙원을 이룩한 전교조는 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교육의 주체세력으로서 교육과 사회개혁에 앞장서며, 교육정책 수립과 집행에 참여함은 물론 다른 교직단체들과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례하고 과격했던 그동안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급진성을 말끔히 걷어내겠다』는 김귀식 위원장의 말은 전교조 반대세력에게도 감명을 주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는 『전전에는 육군, 전후에는 총평(總評)』이란 말이 유행했다. 노조단체 연합체인 총평이 그토록 위력을 발휘한 데는 일교조(日敎組)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그 총평이 90년대 들어 해산의 비운을 맞았고, 일교조도 96년 강성 대결노선을 화해노선으로 바꾸었다. 강경일변도의 투쟁에 신물이 난 회원들의 외면 때문이었다. 전교조가 처음부터 부드러운 노선을 천명한 것은 그래서 믿음을 준다.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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