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남을 고전] (4) 영화
1999/01/06(수) 17:44
돈도 테크놀로지도 아니다. 명작을 낳는 것은 자유와 고집이다. 4·19혁명이 가져온 빨랫말미같은 자유의 시대. 일본식민지시대에 재갈이 물린채 시작해 전쟁과 독재, 반공이데올로기에 눌려 신음하던 한국영화는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살피고 신음을 다시 들어보면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신분사회와 가난을 꼬집었다. 비록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다.
한국일보사가 영화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영화」설문조사도 이 사실을 증명했다. 50명중 42명이 추천해 최고작으로 뽑힌 유현목감독의 「오발탄」과 「하녀」(감독 김기영)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감독 신상옥) 「마부」(감독 강대진)가 모두 이때 발표된 작품들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소위 1세대감독과 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영화는 꿈이 아니었다. 현실과 역사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었다.
「오발탄」은 자유당 말기인 59년 한국 최초의 조명기사인 김성춘씨가 『뜻있는 영화 한 편 만들자』며 사재를 털고, 감독 배우 스태프가 노 개런티로 봉사해 13개월만에 완성했다. 한국전쟁과 가난이 인간의 삶과 미래의 방향감각을 어떻게 빼앗아 가는가를 냉정하게 그려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백미로 꼽혀온 작품이다. 95년 영화진흥공사 선정 「광복 50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나운규 「아리랑」의 저항정신을 이어받은 「오발탄」의 리얼리즘은 막내 이광모감독의 「아름다운 시절」로 이어지고 있다.
90년대 들어 젊은 영화인들이 가장 주목했던 감독이 바로 김기영. 그의 독특한 색채와 영상미학, 키치적 모습에서 한국영화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가정부를 뜻하는「하녀」는 경제적 권리가 없는 작곡가와 성으로 그를 차지하려는 하녀, 부의 축적을 통해 상류사회로 나아가려는 아내를 통해 신, 구가치의 충돌을 드러낸 작품이다. 82년 감독 자신이「화녀 82」로 리메이크했다. 「만추」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는 각각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과 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이다.
한국전통사상(불교)과 정신, 생활을 소재로 하면서 보편적(국제적) 주제를 담는 영화의 맥은 「만다라」「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서편제」로 이어진 셈이다. 「바보들의 행진」의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우화적인 젊은 날의 우울한 초상은 80년대 배창호와 이장호를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인들은 10년 전 배용균과 지금 이광모의 고집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할리우드의 상업성에 점점 물들어 너도나도 기획상품만 쏟아내는 우리 영화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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