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이 밝았다. IMF에 짓눌려 온 98년을 넘긴 탓일까. 새해를 맞은 느낌이 과거 그 어느 때와 다르다. 각오도 새롭다.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98년에 쌓인 일상의 더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해 말 찾아 온 독감만 해도 그렇다. 감기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직도 주변에 많다. IMF형이라 그런지 이렇게 지독하기는 처음이라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김대중대통령까지 감기로 쉬었다고 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이 감기 정도(?)로 일주일씩 쉬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을 추구하는 「국민의 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세계적으로 감기만큼 흔한 병도 많지 않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에서 열사의 땅에 이르기까지 감기는 어디에나 있다. 바이러스도 200여가지에 이르고 코감기, 목감기, 기침감기, 독감 등 종류도 여러가지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감기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감기쯤이야』라고 여기는 통 큰 곳이 우리라면 『감기때문에』라는 변명이 어디서나 통하는 곳이 러시아다. 모스크바에서 학교를 다녔던 딸애는 『감기 때문에』 학교를 일주일씩 쉬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심장병을 처음에는 『감기 때문에』라고 둘러댈 수 있을 만큼 감기는 「주의를 요하는 병」이다. 날씨가 더운 동남아시아와 중동에는 「에어컨 감기」가 심하다.
99년 달력은 넘겼지만 세계는 지난해의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불확실성은 그만큼 변수가 많다. IMF독감처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탄핵문제가 막바지에 들어섰고 이라크와 코소보 사태는 어디로 튈 지 모른다. 아시아의 위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Y2k, 유러화 탄생, 핫머니, 인터넷, 세기말 등 새 요인들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공포의 마왕」예언을 그냥 듣고 넘기기엔 불안할 정도. 『감기 쯤이야』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대하다간 바다 건너편 기침 한 번이 우리에겐 독감으로 돌아올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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