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도래지 강원 철원평야가 지자체에 의해 황폐화하고 있다. 한국전쟁후 민간인 출입통제선으로 묶여 호사비오리 등 희귀조류 10여종을 포함해 철새 10만여마리가 찾아오는 「철새들의 낙원」 철원평야가 최근 지자체의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사업 등으로 자연환경이 급속히 파괴돼 철새들이 떠나고 있다. 조류전문가들은 이대로 방치할 경우 2년후면 철원평야가 황량한 「철새의 실락원(失樂園)」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철원평야중에서도 철새가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은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와 월정리 샘통(천통리)지역. 그러나 지자체가 철새보호대책도 마련하지 않은채 도로를 마구 개설하는 등 철새를 내모는데 앞장서고 있다.
3일 오후 분단된 경원선 마지막 역사인 월정리역 인근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 2차선 도로변에는 관광객 수십여명이 탐조관광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부는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바로 옆까지 접근해 셔터를 눌러댔고 한 관광객은 승용차를 철새보호구역안까지 몰고가 먹이를 던져줬다. 깜짝 놀란 두루미들이 3, 4마리씩 무리를 지어 비무장지대 너머로 달아났다. 연간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만 70여만명. 탐조관광을 온 아마추어 조류탐조가 김영태(金永泰·45)씨는 『관광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돌을 던지는 바람에 두루미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산리에서 2㎞가량 떨어진 샘통지역은 정부가 73년 천연기념물 245호로 지정, 한때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를 비롯해 323호 황조롱이, 243호 독수리 등 희귀 조류가 한꺼번에 수백마리씩 날아와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96년 철원읍 신탄리~월정리간 연장 10.7㎞의 3번국도가 개통된 뒤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하루 평균 차량 수백대가 시속 120~150㎞로 달리고 경음기까지 사용하지만 철새보호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하나도 없었다. 또 96년 수해뒤 대대적인 경지정리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평야 한가운데에 큰 바위들로 둑을 쌓은데다 지력향상을 위해 논을 갈아 엎는 면적이 늘어나면서 벼이삭 등 철새들의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됐다. 최근에는 고추냉이 비닐하우스가 들어서면서 철새들이 물 한모금도 먹을 수 없게 됐다.
서식지가 훼손되자 철새들은 인근 백마고지, 산명호저수지 등이 있는 철원군 동송읍 대마리 일대와 양지리 토교저수지 등 인적이 드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조류학자 원병오(元炳旿)경희대 명예교수는 『철원평야 2,700만평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한뒤 민관이 합동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철새들이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이동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