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플로리다반도 남단에서 손짓하면 닿을 것 같은 카리브해 한가운데 자리한 쿠바. 쿠바의 세모는 「리베르트(자유)」의 함성으로 물결치고 있다. 새해 1월 1일로 공산혁명 40주년, 카스트로 집권 40주년을 맞는 쿠바인들은 수도 하바나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그러나 함성의 뒤에는 경제지원을 하던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찾아 온 경제위기의 고통스런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6년간의 게릴라 투쟁 끝에 59년 1월 1일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을때 세계는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에 찬사를 보냈다. 코카콜라사는 「쿠바 자유민주주의 부활」을 축하하는 광고를 내고 미 정부도 환영했다.
그러나 70년까지 약 5,000명의 반역자를 처형했다. 61년 사회주의 정권을 선언하면서 서방세계와도 결별했다. 특히 62년 구 소련 핵무기로 미국에 맞서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 과정은 명과 암이 뚜렷하다. 사회주의 정권을 선언한 61년 이후 오랜 유대관계를 맺어 오던 미국과 결별하고 구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한때 중미 국가 중 가장 큰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식량의 무상배급, 의료·교육의 무상서비스 등으로 높은 복지수준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극도로 반체제운동을 억압, 80년부터 미국으로의 난민 대탈출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약 100만의 난민들이 탈출했다. 이와 함께 구소련의 붕괴는 비효율적인 계획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식량 배급과 연금수준도 줄어들면서 쿠바인들의 생활 수준은 중미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전락했다. 평균 10달러의 월급, 3달러의 연금 수준으로 서민들은 생활을 지탱하기 힘들어졌다.
쿠바는 90년대 들어 계획경제의 폐단에서 차츰 탈피하면서 개방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인의 달러 보유와 해외 관광객 입국, 외국인 투자 등 경제 개혁을 통해 경제위기의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혁명 40년이 지난 현재 카스트로는 생존한 세계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자이다. 아직 체제의 동요도 그리 심하지는 않다. 그러나 40년의 사회주의 실험의 성공 여부를 「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는 카스트로의 장담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김정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