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한 해였다. IMF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뿌리째 뽑힌 가정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키워가며 희망찬 미래를 기약해온 우리 이웃들의 큰 기쁨, 작은 행복을 들어본다./문화과학부▤강성오(54·서울 독립문초등학교 교감) 나이는 많지만 아직도 욕심이 많은 편이다. 틈틈이 써 온 시와 수필이 올해 문예지에 나란히 추천받게 됐다. 원래 문학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기뻤다. 평소 생활하면서 느낀 감상을 옮긴 글들이라 내가 살아온 삶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또 한 가지가 있다. 결혼 14년째인 나는 몸무게가 결혼하기 전과 똑같았는데 올해 처음으로 4㎏늘었다. 마르고 볼품 없었는데 이제는 「볼 거리가 생겨 좋다」는 주변사람들의 인사를 들으면서 체중과 같이 하찮은 걸로도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항상 「살이 좀 쪘으면」하고 아쉽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모습을 못 보여드려 아쉽다.
▤고완선(35·서울 종로구 신영동) 참 힘든 한 해였다. 1년간 병석에 계시던 시아버지가 1월에 돌아가시기까지 지난 해부터 보름에서 한 달 간격으로 가까운 친인척 10여분이 돌아가신데 이어 봄과 여름에 막내 서방님과 시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셨다. 여름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큰 일이 계속 터지니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12월은 정말 잔잔하게 지나갔다. 집에서 조촐한 송년회를 마친 다음 날인 29일, 눈부신 아침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고단할 테니 일어나지 말라며 남편이 말했다. 마지막 달이 편하니 1년이 다 좋았다고 생각하자고. 어쩌면 내 생각과 똑 같을까. 순간 이제 둘이 같이 늙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별 일 없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경아(29·메리트커뮤니케이션즈 직원) 4년반의 연애 끝에 11월에 결혼했다. 연애기간이 길어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해서 함께 사니 모든 게 새롭고 좋았다. 친정식구가 모두 미국에 살고 있어 결혼 전에는 혼자 생활했는데 이제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특히 좋았다. 밥도 함께 먹고 출근도 함께 한다. 주말이면 운동이나 산책도 함께 한다. 최근 심한 감기몸살로 앓았을 때였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움직일 수가 없자 남편이 출근도 하지 않고 병원에 함께 가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죽을 끓여와 숟가락을 쥐어주었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먼지가 많으면 기관지에 좋지 않다고 혼자서 청소를 하고 가습기가 없다고 당장 밖에 나가 사오는 것이었다. 정말 결혼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귀희(41·주부·서울 노원구 공릉1동) 반지하에 세든 우리집은 올여름 물난리를 겪었다. 8월 초 어느 날 새벽, 집주인이 큰 물이 들이닥친다며 다급하게 깨웠다. 방바닥은 이미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창문 틈새로도 쏟아져 들어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가전제품부터 윗층으로 옮겨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주인집 내외와 윗층 세입자 여러 분이 달려들어 짐을 옮겨주신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비가 그친 뒤 주인아주머니는 여러 날 밥을 해주고 매일 내려와 벽이며 방 안이 얼마나 말랐는지 살폈다. 수해보상비가 나왔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쓰라고 했지만 너무 고마워서 주인댁에 드렸다. 나중에 들으니 공릉동 일대 900가구 이상이 물에 잠겼지만 그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싸운 집이 거의 없었다.
▤김송희(32·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올 연말은 각별하다. 93년 성탄절에 결혼한 후 5년간 애타게 기다리던 끝에 결혼기념일을 앞둔 9일 예쁜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차례의 유산을 한 터라 올해 초 어렵게 임신을 한 후에도 걱정이 태산같았다. 게다가 의사로부터 수정란이 착상할 때 위치가 좋지않아 자연분만이 불가능하고, 기형아검사에서 염색체이상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자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3개월동안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매일 밤 잠을 못 이뤘다. 조기출산의 기미가 있어 입원까지 했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던 날. 간호사가 건강한 아이라며 보여주는 순간 눈물이 핑돌며 출산고통은 이미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김은경(30·국제영어책읽기한국모임 직원) 우리 가족도 IMF로 큰 시련을 겪었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 시아주버니의 보증을 섰는데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온 가족이 돈문제로 고통을 받게 됐다. 결국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야 했다. 위급할 때는 남편 월급까지 차압당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그런 상황까지는 닥치지 않았다. 다행히 새로 이사한 집도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가족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예전에도 시아주버니 사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갈등을 겪은 적이 있었다. 우리같은 월급쟁이는 상상도 안 되는 거액을 빌려썼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원망이 돼 부부싸움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제의 어려움을 기꺼이 함께하는 시댁분위기가 아름답게만 여겨졌다.
▤김정아(25·국립의료원 간호사) 요즘 친구들 만나기가 민망할 정도로 기분좋다. 3년째 간호사로 일해오다 10월말 의료보험연합회 공채시험에 합격, 새해 2월부터 출근을 앞두고 있다. 주변 친구나 후배들이 직장을 못 구해 쩔쩔매고 있는 때에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또 한 번 취업한 게 가끔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직장을 바꾸게 된 것은 간호사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처음엔 양호교사를 염두에 두고 틈틈이 시험준비를 해오다 우연히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취업문도 그렇게 좁지 않은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한(33·SK제약 경영지원팀 대리) 올해는 봉급생활자들에겐 악몽의 연속이었다. 퇴출과 명예퇴직, 감봉…. 그 화살이 나 개인이나 우리 회사, 그리고 수첩에 적힌 낯익은 이름들만큼은 피해가길 바랐다. 하지만 한 친구가 기어이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소주 한 잔으로 위로할 시간조차 내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하고 있을 무렵, 그가 추풍령고개 한 농장의 관리인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들이 모여 그의 새 일터를 방문했다. 삼겹살과 소주로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비록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허리춤이 홀쭉해졌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뻤다. IMF를 넉넉하게 이겨내고 새롭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친구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심경석(66·전직교장·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난 해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올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40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부모 외에도 조부모 삼촌등이 함께 살던 대가족제도에서는 여러 사람이 자녀를 지도할 수 있었지만 핵가족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막중하다. 교육열은 높지만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가르쳐 아이를 망치는 모습도 자주 봤다. 평소 희망대로 전국을 돌며 자녀지도교육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뒤 「잘못된 것을 깨우쳐줘서 고맙다」고 할 때는 너무 기뻤다. 5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있었던 「어머니가 가르치는 글짓기지도」강의가 끝난 뒤에는 50여명의 어머니가 「심경석클럽」도 만들었다. 매달 한 차례씩 삶의 지혜를 전해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임행규(50·주부·서울 성북구 종암동) 인생에 고통과 불행만 있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11월에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었지만 기특한 아이들(2녀1남) 덕분에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암으로 9년동안 고생하는 남편을 간병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의 힘이 컸다. 특히 올해들어 남편병세가 나빠질 즈음 고2 아들이 가져온 뜻밖의 선물은 남편은 물론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9월 과학기술대 특차입학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공업교사로 평생을 보낸 남편은 『내가 못 이룬 이공학자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대학에 다니는 딸들도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이번 학기도 모두 A학점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남은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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