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사상 처음으로 5대 재벌 계열사인 LG반도체에 대해 집단 금융제재 방침을 결정하고도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끼리 사운(社運)을 건 협상에 은행이 너무 일사불란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 제재의 법적인 타당성은 있느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현대와 LG계열 15개 주요채권금융기관들은 28일 반도체부문 대규모사업교환(빅딜)협상 차질의 책임을 물어 LG반도체에 신규대출 중단등의 집단 금융제재 방안을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 채권기관들은 결정 과정은 물론 결정 자체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표시를 감추지 않고 있다. 회의가 며칠 전부터 예고됐지만 회의장을 들어서기 전까지 안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시일이 촉박한 점도 이해는 가지만 최소한 실무자들의 보고를 통해 은행장들이 내용을 파악한 뒤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결과는 정반대지만 「협조융자」「부도유예협약」등의 의사결정과 작동방식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또 이날 결정이 법적인 문제로 비화할 경우 금융기관들의 대응논리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주요 채권은행 관계자는 『이날 결정은 이달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재계 정책간담회 합의문에 근거한 것이어서 법적인 효력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합의문은 「12월25일까지 반도체 핵심경영주체선정을 완결하며, 이를 실천하지 못할 경우 귀책사유가 있는 기업에 대해 채권금융기관은 신규여신중단 및 기존여신의 회수조치를 실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8일 회의장에서도 일부 은행장들이 이런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은행장은 이날 『돈을 빌려간 기업이 신용도에 심각한 영향을 줄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채권단이 기업의 존폐를 가를 금융제재를 할 권리가 있는가』고 지적했다.
문제제기가 적지 않자 은행 실무자들은 물론 속기사까지 내보내고 은행장들끼리 10여분 동안 비밀리에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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