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끼워주고 초콜릿 나눠주고 물건값의 5~10%나 되는 수첩도 덤으로 준다. 추첨으로 진돗개까지 준다. 20~30%나 할인된 가격으로 통신판매까지 한다. 술집이 호객할 때 나눠주는 일회용 휴지까지 주면서 유혹한다. 매장에서는 귤까지 덤으로 주면서 『좀 사 가라』고 외치지만 고객들은 그래도 덤덤하다.무슨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인가? 다른 것도 아닌 책이다. 그것도 싸구려 책이 아닌 이름있는 작가들의 문학책을 팔기 위한 수단이다.
책이 안 팔린다. IMF시대 이전 같았으면 100만부는 너끈히 팔렸으리라고 예상되는 작품이 10만~20만부 발행 예상에 그칠 정도이다. 최근 대하장편 「변경」을 전12권으로 완간한 소설가 이문열씨는 작가생활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지방 대도시를 잇달아 돌며 「작가 사인회」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한국문학의 간판 격인 이씨는 필생의 작품인 「변경」에 대한 독자반응이 뜻밖에 저조하자 이렇게 나섰지만 내심 크게 낙담한 모습이라고 주위에서 전한다. 독서시장의 피크인 겨울방학은 왔지만 학생들의 손길은 문학책으로 몰리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출판사의 기묘한 판매 전략. 저자사인회 형식의 이벤트는 이미 낡은 수법이다. 인기작가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사인회를 해도 독자들이 생각만큼 몰리지 않는다. 그나마 몇몇 작가들에게만 젊은 독자들이 몰릴뿐이다. 얼마 전 이런 행사에 나섰다가 독자들이 젊은 인기작가들에게만 몰리는 것을 목격한 소설가 이제하씨는 그 내용을 자신이 출반한 CD에 랩으로 담아 두고두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공지영씨의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를 출간한 푸른숲 출판사는 최근 전국의 중고교 국어교사 100여 명에게 작가 인터뷰를 담은 30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발송했다. 소설의 내용, 작가가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을 녹취한 것이다. 출판사는 『선생님들이 「유익하다」「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겠다」며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출판사는 또 대형서점 등에서 「절망보다 어려운 선택, 희망」등의 문구가 겉봉에 인쇄된 휴지도 판촉물로 나눠준다.
TV 영화 콘서트 등 대중매체를 통한 책 판매 경쟁도 치열하다. 인기 TV드라마 주인공이 특정한 책을 읽거나 들고 있는 장면이 방영되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세태다. 그 덕에 괴테의 기행문이 예상을 깨고 6만부 가까이 팔렸고 김재진 시인의 시집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황동규 시인의 오래된 시집이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영화 「편지」덕분이었다. 3권짜리 장편소설을 낸 한 출판사는 10월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2,500여명이나 되는 청중들이 몰렸지만 막상 책을 사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출판사는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봤다. 각종 단체가 발표하는 권장도서 목록에 끼려는 물밑경쟁도 치열하다. 독자들을 추첨해 해외여행을 보내주거나, 퀴즈를 내서 등록금을 주기도 한다.
98년을 마감하는 문학출판계의 우울한 모습이다. 한 문인은 『작품보다 상술을 동원해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문학이 독자에게서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최소한의 위엄마저 스스로 저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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