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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라는 병(오미환 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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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라는 병(오미환 문화과학부기자)

입력
1998.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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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카드 판독기에 쾅 부닥치고는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도 괜찮으냐고 묻지 않는 것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여겼는지 운전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도로 앉았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승객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모른 척, 아무도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 맨 앞자리에 앉았던 여학생이 넘어진 손님의 가방을 받아 무릎에 얹었을 뿐이었다. 그는 한참 뒤 일어나 계속 선채로 타고 가다 내렸다.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지만 안심이 안 돼서 나중에라도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차량번호와 운전기사 이름을 적어줬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화가 났다. 사람이 다쳤는데 관심조차 안 두다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같았지만 어쩌면 그럴까. 아파서 주저앉은 사람을 보면서 좌석에서 엉덩이 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살기 힘든 시절을 만나니 마음까지 각박해진 탓일까.

관심이 넘쳐 참견이 지나치면 골치 아프지만 무관심은 더욱 문제다. 섭섭한 건 둘째 치고 가끔 치명적이기도 하다. 술꾼들의 겨울은 특히 그렇다.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길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추위에 얼어죽을까봐 염려가 돼서 다가가 깨우거나 파출소나 집에 연락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 힐끗 한 번 쳐다보고 혀를 끌끌 차고는 지나가 버린다.

얼마 전 역 구내에 잠든 취객을 밖으로 끌어내 방치해서 숨지게 한 지하철공사 직원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술에 곯아떨어진 주인을 밤새 지켜준 충직한 개가 화제가 됐다. 이쯤되면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무관심은 사람 사이에 무수한 실금을 긋고 그것은 점점 커져서 건널 수 없는커다란 틈새를 만든다. 어디 금 간데 없나, 놓치고 건너뛴 인정의 건널목은 없는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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