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기자들은 통상 「와이어 룸(wire room)」이라 불리는 방에서 일한다. AP, AFP 등 세계 주요 통신사가 타전하는 뉴스를 수신하는 기계들이 있는 방이다. 이 것들은 365일 24시간 끊임없이 뉴스를 토해낸다. 종이 갈아대기도 바쁘다. 기자들은 이 엄청난 뉴스의 홍수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아내고 선택한다.인터넷의 주요 사이트와 특파원의 보고, 세계 유수의 신문·잡지들도 뉴스의 가치와 흐름을 판단하는 데 절대적이다. 통신망의 발전으로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울에서 동(同)시간에 접하고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아차하다간 낙종이다. 「경위서」를 써야 할 판이다.
국제부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감(感)이 생긴다고 한다. 마치 사냥개처럼. 방금 들어 온 뉴스가 어떤 국제적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등에 대한 본능적인 후각이다.
올 한 해도 와이어 룸은 참 바빴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세계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데 갑론을박했으니까. 그러나 기자들의 감은 많이 빗나갔던 것 같다. 국제정세와 경제의 흐름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불예측성, 불확실성이 지배한 한 해였다.
1월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 문제가 한 해를 끌며 클린턴의 탄핵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 점친 사람은 없었다. 11월의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의 패배도 예상은 쉽지 않았다. 19일 클린턴 탄핵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된 후 한국일보 국제면은 뉴욕 월가의 주가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오보」를 했음을 고백한다. 다우존스 주가는 올라도 한참 올라 지금 상종가를 치고 있다.
지난 봄 인도네시아에서 물가시위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철권통치자 수하르토가 그렇게 빨리 사임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사태의 최대 고비였던 5월20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탱크와 장갑차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국제부 기자들은 일단 후유하며 밤늦게까지 통음했음을 고백에 추가한다. 다음 날 아침 술도 깨지 않았는데 수하르토는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12월17일 미국의 「사막의 여우」 작전.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공습은 오히려 미국을 외교적 수세에 몰아 넣은 결과가 됐다. 10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런던에 병을 고치러 갔다가 체포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4월 비아그라라는 파란 알약이 미국에서 나왔다는 짧은 뉴스를 보도했다. 이 약이 올해 세계 10대 뉴스를 장식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기막힌 약효에 놀란 고개 숙인 남성이라면 혹 모르겠지만.
지난 해 7월2일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던 날 이 뉴스를 1면에 보도한 국내외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한국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1년이 지난 올해 이 날 세계언론은 아시아발 세계금융위기 1년을 정리하는 특집을 다투어 내보냈다.
세계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시작된 엔화 하락추세는 연말에 180엔대까지 이를 것이라는 경제석학들의 전망을 지난 여름 한국일보는 보도했다. 그런데 지금 엔화 시세는? 아시아 경제위기 전보다 높은 110엔대를 지키고 있다. 투기의 귀재라는 조지 소로스도 러시아의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 잘못으로 수십억 달러를 잃었다.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예지와 통찰이 부족함을, 필연으로 귀결짓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감을 한탄해야 할 일이다. 세기말을 맞는 1999년 어떤 불예측성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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