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 정치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다시 불러 일으킨다. 단순히 기능적 측면만 보더라도 국회의 직무유기는 일반 상식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정기국회를 성과없이 넘기고 새로 열린 임시국회 회기가 이틀밖에 안남았는데도 아직 300여개의 안건이 표류하고 있다. 교원노조 합법화, 교원정년단축 등 첨예한 관심이 쏠린 사안들이 정치내외적 이유들로 결론이 나지 않고, 여야총재가 합의한 경제청문회 개최여부도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또한 규제개혁 법안 171개의 처리가 대부분 유보되거나 변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법안들은 정부 10개 부처별로 통합돼 일괄상정돼 있어 애당초 절차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건 하나하나에 달린 대외적 국가이익이나, 경제적 효과의 시급성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무더기 미제상태로 막다른 골목까지 와서는 안될 것이다.
더구나 변호사 회계사 관세사 등의 사업자단체를 복수로 설립, 의무가입을 배제토록 한 법개정안들은 관련단체 로비나 해당직 출신의원들의 방해로 무산될 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는 이익단체들의 집단이기주의와도 다를 바 없는 파렴치한 처사로 우리 국회의원들이 최소한의 직업의식, 윤리의식마저 마비돼 있다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국회사무처는 현 의사당의 돔 모양 지붕을 기와로 뜯어 고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수십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갈 이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조형미와 건물의 인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작 할 일은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이렇게 시도 때도 못가리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한심하기 만하다.
아무리 국회가 정치이해의 충돌과 이로인한 비능률이 전제돼 있는 제도라고 해도 이 과정에 일정한 룰과 그 정신을 존중하는 토대가 상실돼서는 안된다. 정치가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로 지탄받아 온 지는 오래이다. 국회를 통해 걸러지고 해결돼야 할 갖가지 사회갈등요인과 국가과제들이 국회에서 오히려 재생산되고 방향을 상실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IMF체제아래 고통받는 국민들은 국회의 존재 의미마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회와 국회의원들은 존재의 도덕적 이유와 기본적인 행위규범을 상실한 상태로 너무 오래 지내왔고, 불감상태도 깊어만 가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 국회의원들은 최소한 세비값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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