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보장장치 등 ‘보이지 않는 손’ 마련돼야/스스로 경영합리화 가능한국의 재벌총수는 법적 실체가 없는 유령이요, 그래서 초법적 존재다.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면 법적 책임은 고용사장이 진다. 하나의 유령이 수십개의 기업군에 대해 주먹구구식 독단을 자행하고 있다. 사업을 분석에의해 하는 게 아니라 후각과 배짱으로 한다. 이러한 무대포식 경영권은 박탈돼야 한다는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병행한다는 것은 말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시스템을 만들려면 개념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정리돼야 할 개념은 「기업주」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주」는 사실상 재벌총수로 대표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업주」란 무엇인가. 한보, 동아, 해태, 청구등 수많은 기업들을 보자. 거기에서 나타난 「기업주」들이 정말로 기업의 주인들인가? 그들은 『내 기업이니 내가 살려야 되겠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법적 실체를 이용해 뒷돈을 벌고 그 돈을 달러로 바꿔 해외로 도피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국민이 저축한 돈을 은행에서 빌려다 탕진하고 기업을 「걸레」로 만들어 던져버린 사람들이다.
선진기업은 「기업주」에 의해 경영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경영된다. 선진 외국인들은 시스템을 믿지 사람을 믿지 않는다. 기업주는 개인이 아니라 주주진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같이 가려면 다음과 같은 시장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단위 하나하나에 세 개의 독립적 객체를 형성한다. 주주진, 경영진, 공인회계법인체다. 이들 세 객체는 독립적이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유기적 연관 관계를 갖는다. 둘째, 기업단위당 주주진에는 2명 이상의 가족이 있어서는 안된다. 여러명의 가족이 한 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면 족벌체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셋째, 주주진은 경영진을 선발하고, 경영진을 감시할 공인회계법인체를 선정한다. 넷째, 기업재무제표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공인회계사에게 일생을 담보할만한 가혹한 처벌을 내리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 주식을 사는 사람들은 공인회계사의 서명만 믿고 재무제표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공인회계사의 수임료는 지금처럼 『건당 얼마』라는 식의 형식적 정액제가 아니라, 리스크에 따라 자유롭게 협상돼야 한다. 리스크가 높다는 것은 기업의 회계시스템이 엉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회계시스템은 엉성하고, 국민에게는 「진짜재무제표」를 내놓아야 하는 공인회계사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공인회계사의 회계자료 감시노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만큼 수임료는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기업이 연말에 작성해놓은 재무제표를 공인회계 회사는 3명을 1개조로 편성해 3∼4일만에 서명해주지 않는가. 이런 재무제표를 누가 믿을 것이며, 이런 재무제표를 믿고 누가 주식을 사겠는가.
위의 다섯 항목만 법제화하면 정부가 구태여 빅딜을 해라, 장래성 있는 기업에 은행돈을 대주라(워크아웃),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증진하라는 식의 요란을 떨 필요가 없다. 재벌은 자연적으로 해체된다. 대기업에게 무서운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지 정부가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칼춤이 아니다. 개혁의 본질은 시장메커니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바로 위와 같은 식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드는 일이다.
국민의 돈 64조원을 풀어 은행의 부실채권을 청소해줬다. 기업을 평가할 줄 모르는 은행은 결국 『그래도 대기업 밖에 없어』라며 또 다시 대기업에만 돈을 빌려주고 있다. 불과 얼마 안돼 대기업과 은행이 동반부실로 치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은행개혁의 본질은 당장의 재무구조를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외형적 칼질이 아니라 가만 두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경영합리화를 도모할 수 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어떻게 만드는가? 이는 재벌개혁 시스템보다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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