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지… 현실인지…/대량 실직시대 직장인들 애환 사실적 묘사 찡∼실직자·노숙자문제는 요즘 가장 첨예한 사회문제이다. 무대라고 이런 냉엄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두 편의 연극, 「디지털! 돼지틀?」(1월31일까지 은행나무극장·0236726051)과 「도살장의 성(聖)요한나」(30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023324116)는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은행나무극단의 「디지털! 돼지틀?」(연출 윤우영)은 인터넷신문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작가(양영찬)가 경험을 토대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 특히 단절되고 이해타산적인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묘사한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잘려」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회사생활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극단 우리극장·완자무늬의 「도살장의 성(聖)요한나」(연출 김태수)는 60여년 전 브레히트의 작품. 정육업계의 막강한 자본가 몰러가 시장을 독점하면서 정육공장들이 차례로 도산하고 실업자들이 들끓는다. 구세군 출신의 여인 요한나는 착한 성품에 호소해 현실을 바꿔보려 하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실직가정에 5,000원권의 할인티켓을 판매하며 수익금도 실직가정돕기 기금으로 기탁된다. 구세군에선 이 티켓 250매를 구입, 실직자를 초청할 예정이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이 참 의외다. 자기 문제로 느낄수록 관객들은 심각해진다. 인터랙티브연극이라고 이름붙인 「디지털! 돼지틀?」은 극의 진행에 대해 관객의 의견을 묻거나 직접 무대에서 연기를 하라고 하는데 샐러리맨들이 나오면 분위기가 굳어진다. 직장상사와 대립하는 장면에서 『말로 잘 달래보겠다』며 무대에 올라온 한 직장인은 고집부리는 상사를 멱살잡이까지 하는 바람에 정말 연극이 끝날 뻔했다. 특히 실직한 주인공이 아이를 놓아두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선 분위기가 침울해진다. 설문조사에서 많은 관객들이 『주인공을 살려두면 안 되느냐』고 적어냈다. 반면 학생들이 객석을 채우면 재치와 발랄함이 넘친다.
「도살장의 성 요한나」는 대사가 많고 분석적이어서 객석에서 편히 즐기기 힘들다. 193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삼아 IMF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담요를 뒤집어쓰고 도살장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서울역의 밤과 같다.
광복 직후 가난한 서민의 삶을 묘사한 연극 「혈맥」은 50년이 지나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재공연됐지만 48년 초연땐 너무 현실적이어서 흥행에 참패했었다. 현실을 적확하게 담으려는 연극적 노력은 때로 고통스럽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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