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IMF로 인한 고통이 사회 각 분야를 파고들던 시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례없이 심한 수해가 밀어 닥쳤다. 너나없이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 때였지만 수재민돕기운동이 봇물처럼 번져 위기에 처할수록 하나로 되는 우리의 저력를 확인시켜 주었고, IMF체제 극복의 의지를 되새겼다. 고사리 손들이 저금통을 깨어 모은 성금, 부도난 회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합한 정성이 쏟아져 수재민에게 재기의 의욕을 북돋워 주었다. 그렇게 모은 성금 665억원과 정부예산 등 2조2,311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수해복구를 위해 지출됐다.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국민의 혈세와 정성이 수재민들에게 돌아가기는 커녕 도중에 유용되고 엉터리로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KBS 보도 등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경기 파주시의 경우 하천복구를 하면서 설계도면과 달리 눈가림식 공사를 했으며, 하지도 않은 발파작업을 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시공업체에 막대한 비용을 지급했다.
강원도 철원군도 수해복구비를 지급하면서 같은 피해농지에 대해 3차례나 복구비를 지원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땅에 복구비를 지급한 것으로 위장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한 수해농가의 경우 4,200만원의 복구비가 책정됐으나 실제 지급된 액수는 2,300만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200만원을 공무원들이 사례비로 뜯어갔다고 한다.
또한 전북 정읍에서는 수해로 비닐하우스 5개동을 날려버린 농민에게 2만1,000원의 복구비가 나와 해당 농민이 차라리 받지않겠다고 하자 그러면 포기각서를 쓰라고 오히려 괴롭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머지 돈은 공무원과 브로커 손에 들어갔을 것은 뻔한 일이다. 아무리 부패한 공무원들이 많다고 하지만 수해로 시름에 잠겨있는 수재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구비를 빼돌려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공무원이란 신분을 떠나 최소한의 양심을 가졌다면 이럴 수는 없다.
정부는 수재의연금과 수해복구비등의 지급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유용한 예산에 대해서는 해당 공무원의 문책은 물론 빼돌려진 돈을 환수해야 한다. 차제에 수재의연금의 모금과 집행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 설립 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이 낸 수재의연금을 공무원에게 착복당했음을 알고 분노에 떨고 있을 수많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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