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든 아내든 주소득원이 쓴다/씀씀이 세부항목은 다 안적어도 전가족 수입·지출 총액 투명하게/부동산·빚·현금 분류 정리가계부라고 하면 보통 콩나물 얼마, 두부 얼마, 전기료 얼마 식으로 생활비씀씀이를 꼼꼼히 적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30년 넘게 가계부를 써온 이모(61·경기 성남시 분당구)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건 잡기장이지 가계부가 아니다. 진짜 가계부는 기업의 재무제표처럼 가정의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가계관리부」가 돼야 한다. 『가계부는 합리적인 가계 운영의 마스터플랜』이므로 남편이든 아내든 자식이든 주소득원이 쓰는 게 바람직하다. 부부 사이에도 각자의 지출을 정확히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내와 세 남매를 둔 가장으로 65년 5월부터 가계부를 써왔다. 『남자가 쩨쩨하게 어떻게 가계부를 쓰느냐』고들 한다. 이씨는 『기업주가 경영을 책임지듯 주소득원인 남편이 가계를 관리하며 가계부를 쓰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아내에게 모든 것을 떠맡긴채 집안형편을 모르고 지내는 것은 대범함이 아니라 무책임』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생활비를 어떻게 썼는지 일일이 챙기지는 않는다. 그건 아내의 몫이다.
이씨의 가계부는 정직을 바탕으로 쓰여진 가족간 신뢰의 기록이다.
『남편이 꼬박꼬박 생활비를 갖다준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남편이 뒷주머니를 찬다면 아내의 가계 관리는 구멍이 난 것 아닙니까. 가계수입의 전모를 모른채 작은 덩어리만 갖고 발버둥쳐봤자 한계가 있지요』. 부부는 서로에게 유리알처럼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의 가계부 쓰는 요령은 이렇다. 일단 가족 모두의 수입을 확실히 잡아둔다. 얼마가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아야 새는 데 없이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일상 씀씀이를 다 적을 필요는 없고 병원비, 학비, 경조사비처럼 가계의 공식 지출만 챙긴다.
구체론으로 들어가보자. 이씨는 먼저 가족별로 항목을 나눴다. 자신은 K, 아내는 G, 이런 식으로 분류기호를 붙여 수입·지출을 기록하니 월간, 연간 결산이 수월했다. 지출 뿐 아니라 부동산등 자산과 빚, 현금까지 빠짐없이 적고 현금이 움직이면 따로 현금출납부를 쓴다. 예컨대 신용카드로 옷을 샀다면 빚으로 기록하고 대금을 갚을 때 현금출납부에 지출로 적는다.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왔다면 예금칸에 적고 거기서 돈을 꺼내면 현금출납부에 수입으로 적는다. 집을 사서 전세를 놓았다면 전세 수입은 빚으로 적는다.
이씨는 『가계부를 쓰는 목적은 희망을 갖자는 것』이라며 『주부 뿐 아니라 누구나 어릴 때부터 가계부를 써서 합리적인 경제생활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오미환 기자>오미환>
◎가계부 고르기/한주·한달 결산 알아보기 쉬워야/은행가계부 지출 상세/농협가계부 수입 세밀/PC가계부 결산 쉬워
가계부는 어떤 것을 쓰는 게 좋을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가계부는 5∼6종. 은행이나 농협이 제작한 고객배포용과 여성지의 부록형태, 출판사들이 만든 판매용, PC통신가계부등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던 가계부는 저축주진중앙위원회가 내던 것이었으나 올해 이 단체가 한국은행에 흡수되면서 발행이 중단됐다. 대신에 몇몇 은행과 보험사가 개별적으로 제작한 가계부를 고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주택 산업 한미은행과 한국생명등은 1,000∼15만부를 만들어 각 지점에 보냈다. 메모공간과 함께 지출항목이 상세한 점이 특징이다.
농협의 가계부는 농민과 상업종사자등 별도의 수입이 있는 사람들을 배려, 수입항목을 세밀하게 만들어둔 게 장점이다. 농협은 올해 140만부를 제작, 주요 고객과 조합원들에게 무료배표했다.
일반판매용 가계부는 4∼5개 출판사가 내놓았다. 항목이 상세하고 공간도 여유있다. 가격은 4,000∼5,000원선. 여성월간지 1월호부록으로 3,000원 정도를 더 받고 끼워 파는 가계부는 수입·지출항목이 자세하지 않고 광고가 많아 산만한 편이다. PC통신가계부는 지출항목을 쓰면 자동적으로 결산까지 해주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천리안 공개자료실에서 「가계부」검색을 하면 100여 가지의 가계부프로그램이 뜨는데 이를 다운받아 설치하면 된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의 박해경기획실장은 『일반적인 가계부의 경우 한 주일과 한 달의 결산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구성된 것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가계 1년예산 짜기/주택자금·저축 최우선 배정을/금융비·할부 수입30% 이하/현금보유액 항상 점검/병원비 등 예비비 확보
연초에 1년 예산을 짜 계획적으로 집행하면 효율적인 가계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등 고정자산의 가치증식에 기대를 걸지 말 것, 집안에 쓸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 늘 점검할 것, 되도록 빚보증을 서지 말 것등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염두에 두고 예산을 짜라고 조언했다.
월급등 고정수입에 비해 수년간 나눠 갚는 고정지출(대출이자 차량할부금 월세등)이 30%를 넘으면 가계도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불요불급한 지출을 억제해야 하지만 가족들의 건강과 개인 경쟁력을 위한 자기개발투자에 인색해선 안된다. 주택은행 고객업무부 양원용과장의 도움말로 가계예산 짜는 법을 알아본다.
예산안의 기준은 전년도 월평균 지출액과 연말 결산내역을 참고로 하되 내년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 먼저 올해의 수입규모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를 생각한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등 고정수입과 상여금과 같은 비정기적 수입을 예상, 월별 예산을 수립한 다음 수입금액을 어떻게 배분할지 고려한다.
우선 개별 수입에 대한 예상세금과 차입금 상환예정액을 계산한 뒤 내집마련 자금과 저축액을 가장 먼저 배정한다. 이어 남는 자금으로 자녀출산비, 교육비, 집수리비, 월동준비자금, 휴가비, 결혼식 회갑연과 같은 가족 행사비용등 목돈이 들어가는 항목의 지출계획을 세운다.
소비금액은 전년도의 식비 주거비 피복비 교통비등 비목(費目)별 지출액의 월평균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양과장은 『IMF시대에는 수입이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므로 지출계획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가족의 질병과 같은 갑작스런 위험에 대비, 예비비도 어느 정도 계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재학 기자>고재학>
◎가계부를 써보니/“불필요한 구멍이 보여요”/식품재고 파악,장보기 절약/남편용돈 동결 쉽게 설득/가족행사 비용 미리 준비도
주부 김형숙(37·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날강도를 만난 기분이었다. 별로 쓴 것도 없는데 지갑은 텅 비어 빈털터리가 돼버렸다. 올해 가계부 쓰기를 시작한 그는 『쓴 돈을 일일이 적었더니 불필요한 지출이 한 눈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가장 지출이 큰 부분은 역시 사교육비.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의 피아노 미술 영·수 학원비등으로 한 달에 32만원이 들어갔다. 영·수학원은 학습지로 바꾸고 미술학원을 끊어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였다. 또 가계부 메모란을 이용해 식비를 줄였다. 고기 생선 야채를 재어두고도 장에 가면 또 사들이게 되는데 냉장고에 있는 식품을 메모란에 적어두고 이를 참조해 장을 보니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가계부는 일기가 되기도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계부를 들춰보면 알 수 있다. 용돈인상을 요구하는 남편이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도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 보여주면 설득하기가 쉽다.
가계부 쓰기를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가가 너무 올라 화가 난다」는 것. 경조사비와 같은 예상 외의 지출로 적자가 되는 것도 속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써야만 알뜰살림의 지혜가 우러난다. 6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는 권흔주(33·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생필품값도 비교할 수 있어 좀 더 싼 곳을 찾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가계부를 쓰다 보면 가족행사도 미리 예산을 세울 수 있다. 권씨는 『부모님환갑처럼 큰 행사는 1년짜리 적금을 들어 준비했다』고 말했다.<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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