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해야 하니 하려고 덤벼 보지만 일상사에서 이 둘은 별개일 경우가 많다. 전자가 당위라면 후자는 현실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돌파법도 세상사의 이런 현실을 거꾸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여건과 능력이 도저히 닿지 않는 「해야 할 일」이 순리대로 풀릴 리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에겐 「하고 싶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크고 작은 일에서 이 세가지는 대개 뒤범벅이 돼 있다.■공동정권의 내각제문제도 바로 그렇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정치여건은 여의치 않고, 하고 싶기도, 안하고 싶기도 한 여러 사정이 모두 담겨 있다. 며칠전 한국일보가 3당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면면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조사에서 김대중 김종필 두사람의 대선당시 합의가 문맥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51%를 차지했지만, 약속대로 내년말 내각제 개헌이 성사될 것이라고 본 의원은 25%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견해는 정치적 약속의 도의적 측면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그 약속은 대권을 담보로 한 「대합의」였던 만큼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당위론이다. 반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복잡다단한 정치여건을 상정한 현실론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그럴래야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엄존한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의 이중심리가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의 일반적 성향이 작용하고 있다. 바람직한 권력구조로 대통령제를 꼽은 응답이 53%에 달했다. 물론 이는 대통령을 보유한 권력기득 세력과 반대편 세력의 이해충돌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내년말 내각제개헌이 무산될 경우 공동정권이 깨질 것으로 보는 의원들이 53%나 된다는 점이다. 올해는 경제난, 내년엔 정치난을 겪어야 한다면 국민들의 팔자는 기구하기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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