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상◎인문·사회과학/‘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 고동환씨/京江상업 발달 연구통해/서울의 역동적 발전상 실증
인문·사회과학 분야 저작상 공동수상자인 고동환(高東煥·40)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다소 낯선 분야에 천착해왔다. 수상작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지식산업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10여년을 서울이라는 공간 중심의 도시사 연구에 매진해 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역사연구는 주로 왕조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도시중심의 서구문명과 대조적인 관점이지요. 왕조중심의 역사는 공간의 개념에 소홀하게 되고, 인간과 시간, 공간이 어우러지는 역사서술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서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선후기 상업의 핵심인 포구(浦口)상업에 주목하면서부터. 당시 유통의 중심은 뱃길이었고 이러한 경강(京江)산업의 발달이 서울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선후기…」는 이런 생각을 학문적으로 확인한 작업이었다. 그는 경강상업을 통해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보며 서울이 중세사회 해체기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모델임을 포착했다.
그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서울이 내재적 발전도상에 있었음을 증명했다. 학계는 역사연구 방법론 중의 하나인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를 좀 더 균형있게 보완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우리의 발전적인 측면만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반 식민사관적 연구방법론이다.
『이제야 공부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덜컥 큰 상을 받아 두렵습니다』. 그는 당분간 서울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이 근대이후 어떻게 변동했는가, 전통적 도시공간의 변화를 역사적·문화적 측면에서 조명하는 것이 앞으로 그의 연구과제이다.
58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석·박사)을 졸업했고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95년)을 역임했다.<김철훈 기자>김철훈>
◎인문·사회과학/‘유가사상의 사회철학…’ 이승환씨/현대자본주의 反명제로서 유학의 사회철학 정립
『좌도 우도 다 죽고, 생태계와 페미니즘만이 전부인 듯한 시대군요. 전통 사상의 힘과 미덕이 더욱 그리운 때입니다』 인문·사회과학분야 저작상 공동 수상자인 이승환(李承煥·43) 고려대 철학과 교수의 과거탐구는 현실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첫 상이자, 큰 상이라 저에겐 의미가 각별합니다』
수상도서는 동아대 철학과교수로 있던 92년부터 97년까지의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다. 이씨는 유학의 사회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가의 정의관(공자와 맹자)과 사회철학(유가의 법치와 자유), 신유가의 사회철학(주자)등 세 줄기로 이뤄져 있다.
그에 따르면 유가사상은 전혀 편벽되거나 고루하지 않은 진보의 논리다.『인간과 자연의 합일사상은 환경문제, 공동체의식의 강조는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적 준거, 자기절제(修己)의 강조는 탐욕을 양산하는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반명제(反命題)』로서, 이 시대에 건네는 직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이라면 고담준론과 내면수양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유학의 탈정치화」에 대한 통찰이 날카롭다. 현공한설(懸空閑說)을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무장해제하고 절제와 극기만을 강조,「순응적 인간(homme docile)」을 양산하는 권력의 음모 탓이라며 상식의 뒤통수를 후려 친다.
그의 노트북에는 「육체에 대한 미시물리학적 분석」등 책 두 권 분량의 원고가 저장돼 있다. 한국인 육체언어에 내재된 권력의 문제등 94년 이후 기호학(semiology)회지 「삶과 기호」에 게재했던 논문들이다. 노장사상을 사회비판이론으로 재해석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줄담배 2갑, 신쾌동(申快童)류의 거문고, 성금연(成錦鳶)류의 가야금. 집필의 고독을 달래주는 그의 벗이다. 고려대 철학과(74학번), 국립 대만대 철학과 석사, 하와이대 철학과 박사. 계간 「전통과 현대」의 편집위원이다.<장병욱 기자>장병욱>
◎일반시사·교양/‘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이삼성씨/100년간 살육·전쟁 고찰통해 강대국주도 국제질서 비판
「20세기의 문명과 야만」(한길사)으로 일반 시사·교양부문 저작상을 받게 된 이삼성(李三星·41)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올해 상복이 터졌다. 그는 이 책으로 이미 4월에 단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세기의…」는 지나간 100년의 인류문명을 전쟁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작업. 세계질서는 무조건적으로 강자, 즉 미국과 서방을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이들이 주도하는 안보·경제질서에 대해 비판적 진보주의의 입장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97년말 책을 쓸 당시의 지적 풍토는 자본주의의 업적이 앞으로 이룩할 새로운 차원의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의 발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평화와 공존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저지른 폐해에 대한 비판의식은 희박했습니다』
그는 지난 100년동안 행해진 집단과 집단, 민족과 민족, 사회와 사회에 존재하는 살육과 폭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강대국의 주관적 환경의 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아 왔는지, 인류문명이 평화와 공존보다는 파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해 왔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가능하면 좀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방법을 탐색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외과와 서울대대학원 정치학과(석사), 미국 예일대대학원 정치학과(박사)에서 공부한 그는 미국외교와 국제정치가 전공.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광주와 미국의 문제를 깊이 고찰하고,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대안적 분석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우리 현실에서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와, 공존하면서도 미국의 사유에 구속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학문적 과제이다.<김철훈 기자>김철훈>
□번역상
◎‘괴테의 이탈리아기행’ 박영구씨/원전 10회 독파 열정으로 괴테 주요저서 첫 완역
『초판 발행후 8개월만에 재판을 내면서 3부 전체를 반년 걸려 다시 번역했어요. 어휘 표현등 새로 손보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번역상 수상자 박영구(朴泳龜·39·한국외대등 강사)씨가 「괴테의 이탈리아기행」에 쏟아 부은 열정은 놀랍다. 원전 독서만 10번. 그것도 독일서 발행된 2종을 기본텍스트로 삼았다. 독어본 다이제스트본등 참고한 독어판 서적이 10여권, 영역판이 2권. 본격 번역에 착수한 96년 겨울 이후, 1년반이 지나서야 박영구판 「괴테의…」의 윤곽이 떠올랐다.
20대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기에서 탈피, 이탈리아의 밝은 풍광을 1년 9개월간 흠뻑 빨아 들이고 고전주의로 넘어 가기까지 유럽 최고 지성이 그린 정신적 지형도라는 원전의 비중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첫 완역판」이라는 무게가 더 컸다.
한국외대 79학번으로 학·석·박사를 이 대학에서 마친 100% 토종. 박사과정 중 논문자료를 확보하려고 교환장학생으로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에 가 브레히트를 2년간 전공했다. 브레히트의 「흔들리는 사람에게」등 번역서 9권을 냈다. 안정효 이윤기씨처럼 번역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꿈이다.<장병욱 기자>장병욱>
◎심사평/신진연구자의 저작물에 비중둬/각부문 본심진출작들 수상작으로도 손색없어/자연과학 수상작 못내 아쉬움
지난 해에도 참여했던 나와 이태진 교수, 새로 수고해주신 송 복, 장회익교수 등 모두 네 사람이 심사를 맡았다. 저작상 선별을 위해 먼저 심사위원 각자가 몇 편씩 후보작을 뽑았다. 그래서 본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한국과학사의 새로운 이해」「로마법」등을 비롯, 주목할 만한 저작물들이 9편에 이르렀다. 「한국과학사의 새로운 이해」는 끝까지 주목을 받았지만, 이 작품에 명예를 걸어줄 마땅한 다른 출판상이 있다는 생각에서 이번에는 비교적 신진기예의 연구가들의 저작물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 결과 고동환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 이승환의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등 두 권이 인문·사회과학부문의 저작상으로 최종 확정됐다.
고동환의 저작은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연구가 지금까지 주로 농업경제분야에 집중됐던 한계를 넘어, 경강지역(京江地域)의 도시사적 연구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승환의 저작은 유가사상을 사변적인 도덕철학 대신 사회철학 내지 사회비판이론으로 해석한 시도가 주목을 받았고, 21세기를 향한 현 시점에서 서양철학의 이성일변도에서 벗어나 감성을 복원하여 두뇌와 가슴을 갖춘 인간상을 재정립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반시사·교양부문에서는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과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을 함께 검토한 끝에 이삼성의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이 새로운 천년과 새로운 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교양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했다고 보아 이 작품을 선별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자연과학부문에서 뽑을 만한 작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심사위원 전원에게 못내 아쉬움이 되었다. IMF관리체제 하의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출판사들이 의욕적인 출판물을 내놓은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로 평가될만 했다. 출판상분야에서는 독특한 말뿌리사전 형식을 취한 「연세한국어사전」(사전부문), 「문지스펙트럼」(문고부문), 「프로이트전집」(전집부문), 「서원」(기획부문)등 13종을 선정했다.
제한된 부문별 수상작품 선별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의 수작들이 많아 애로를 겪었다. 본심진출작품에는 수상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 여럿 있음을 부기해둔다.<김일수 고려대 특수법무대학원장·심사위원장>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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