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둥이 달라붙어 齒舌로 구멍내고 살 파먹은 흔적바다는 겨울을 타지 않는다. 온통 땅바닥은 얼음덩어리건만 동해의 바닷물은 얼음은커녕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지 않는가. 그게 다 0.5%라는 고농도의 소금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민물의 소금농도는 0.05% 정도). 그건 그렇다 치고, 바닷가의 나그네의 눈에 띄는 저 많은 조갑지에 수많은 구멍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주워 들고 눈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밖에서 파들어 갔고, 동그란 꼴이 모두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겉으로 본 바다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나 그 곳도 들어가 보면 역시 가공할 정글의 법칙이 있어서 약육강식이 판을 친다. 대표적으로 구슬고둥무리가 힘없는 조개에 달라붙어 구멍을 내고 살을 파먹어 그렇게 파도에 밀려나와 뒹굴고 있다. 빛 바랜 구멍난 하얀 조가비들이 모래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지 않는가.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생물들의 투쟁의 산물이라니 좀 아이러니하다.
육식을 하는 고둥들(초식성도 있다)은 입에 탄산칼슘으로 된 딱딱한 치설(齒舌)이라는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끌처럼 조개껍질을 후벼 파서 구멍을 내는데 입에서 염산을 함께 분비하여 녹여내기도 한다. 치설이 물리적인 것이라면 염산은 화학적이라 놈들은 「과학」을 총동원하여 먹이를 잡아 먹는다.
살아 있는 조개는 앞뒤에 있는 폐각근(閉殼筋)이라는 딱딱한 살점이 두 패각(貝殼)을 꽉 붙잡고 있어서 여간해서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고둥이 생각해 낸 것이 「굴삭기」의 원리다. 일단 구멍이 나면 독을 부어 넣어 폐각근을 마비시키니 힘이 빠져서 절로 입을 벌리게 된다.<강원대 생물학과 교수>강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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