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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사건:1(문민정부 5년: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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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사건:1(문민정부 5년:68)

입력
1998.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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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억 터지자 盧씨 되레 “진상밝혀라”/박계동 의원 국회발언순간 모은행 ‘실체’ 첫확인/YS는 加방문중… 청와대·검찰선 사태파악 허둥/부인하던 연희동 하루뒤 계좌맞춰보곤 아연실색『따르릉』

95년 10월19일.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연희동 오후의 정적을 깼다.

『아버지 접니다. 밖이 시끄럽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전화는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載憲·현재 미국유학 중)씨에게 온 것이었다. 재헌씨는 조금전 민주당 박계동(朴啓東)의원이 비자금을 폭로했다는 소식을 듣고 꺼림직한 마음에 급히 다이얼을 돌린 것. 재헌씨는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대구에서 표밭갈이를 하고 있었다.

『괜찮다. 별일 아니니 신경쓸 것 없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노전대통령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재헌씨는 아버지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두 달여전 「한 여름밤의 해프닝」으로 끝난 서석재(徐錫宰) 정무장관의 「4,000억원 비자금 소동」을 떠올리곤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날 국회에서는 오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민주당의 비서진들은 만나는 기자들마다 『오늘 점심시간에 원내총무실에 가면 큰 건이 있을 겁니다』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점심시간에 기자들을 맞은 건 박계동 의원이었다. 박의원이 인쇄된 대정부질의서를 돌렸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노태우전대통령이 퇴임직전인 93년 1월말까지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했던 4,000억원의 비자금을 이원조(李源祚)씨가 모은행 영업담당 상무를 시켜 각 시중은행에 100억원씩 40개 계좌로 나누어 분산 예치시켰습니다. 신한은행은 600억을 할당받아 이중 서소문지점장이 300억원을 예치했습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신한은행 계좌번호 302­38­001672. 잔액 128억2,700여만원. 예금주 하종욱(河種旭)」

잠시후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의에 나선 박의원이 단상에 올라 문제의 신한은행 예금잔고 조회표를 흔들어댔다. 카랑카랑한 박의원의 목소리가 본회의장을 울렸다. 일부 여당의원들은 『또 비자금이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말 뿐이었던 4,000억원설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미 기자들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으로 달려가 확인취재 중이었다. 지점장 이우근(李祐根)씨는 갑작스레 몰려와 예금주를 캐묻는 기자들의 공세에 얼이 빠진 듯 했다.

『40대 남자의 부탁을 받고 300억원의 예금계좌를 개설해 주었습니다』

엉겹결에 나온 이지점장의 답변 한마디가 세상을 바꿨다. 누구의 돈인지는 모르지만 시중에 떠돌던 괴자금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시각 연희동. 『이실장은 돌아왔나. 왜 연락이 없지』

노씨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이현우(李賢雨) 전 경호실장은 얼마전 미국에 간다고 한 뒤 연희동에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 비서가 급히 이실장의 집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지금은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수화기에선 금속성의 자동응답기 소리만 흘러나왔다.

한 비서관의 회고. 『그날 오후 아는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선배님, 박의원이 뭘 터뜨렸어요」하길래 자료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어른에게 자료를 가져다 드렸는데 한번 보시더니 「그런거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자료에 이원조씨가 어쨌느니 운운하는 대목을 보고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청와대도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유엔·캐나다 순방을 떠난 상태였다. 대통령 부재 중 발생한 긴급상황. 연희동과 통화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김영수(金榮秀) 청와대민정수석이 친분이 두터운 서동권(徐東權) 전 안기부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서부장님, 박의원 이야기가 뭡니까. 빨리 파악좀 해주세요』 김전수석의 회고. 『서부장에게서 곧 전화가 왔는데 연희동 돈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틀림없냐고 했더니 그렇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승수(韓昇洙) 비서실장에게도 그렇게 보고했어요. 사실 나는 연희동의 이야기를 듣고 걱정도 안했어요. 또 정치공세가 시작됐고 이 건도 서석재식 해프닝으로 싱겁게 끝날 줄 알았지요』

한실장은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김대통령에게 다른 보고거리를 끼워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전화보고했다. 유선(有線)이어서 그랬을까. 김대통령도 『알았다』고 대답할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상이 걸린 건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김기수(金起秀) 검찰총장과 최명선(崔明善) 대검차장, 안강민(安剛民) 중수부장등이 참석한 구수회의가 열렸다.

(김총장) 『안부장, 폭로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요. 정확한 진상도 모른 채 손댈수도 없고. 함부로 은행을 손대면 경제가 엉망이 되는데 …』

(안부장) 『일단 진상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검찰 출입기자들이 대검중수부로 몰려 들었다. 질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물증이 제시된 만큼 수사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최소한 계좌라도 확인해 봐야죠』

안중수부장이 한참을 생각하다 말을 받았다. 『현재로선 박의원의 발언말고는 아무 자료가 없어 수사여부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명확한 지침이 서지 않았던 검찰로선 일단 「시간벌기」가 최선의 처신책이었다.

이무렵 연희동에서 공식적인 코멘트가 나왔다. 『제발 수사를 제대로 해서 진상을 꼭 밝혀 주세요. 정말 그 비자금의 주인이 누구인지 노대통령도 알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박의원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습니다』

자신감이 묻어있는 어조였다. 노재헌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이실장이 「차명계좌는 없다」고 해서 아버지도 그런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실장은 이에대해 『20일 연희동을 찾아갈 때까지 연락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역사가 만들어 낸 짓궂은 장난이었을까. 순간의 오판은 연희동을 오랫동안 고립시켰다. 한 청와대 비서관의 이야기. 『사실 연희동은 방패가 없었어요. 우리에겐 이미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더우기 언론에 대고 진상을 밝혀달라고 했으니… 이후의 상황은 속수무책이었죠. 대통령이 귀국한 때는 이미 검찰수사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진전됐어요. 만약 연희동에서 우리 돈이라고 했어도 변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잘 안됐을 거에요.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죠. 한번 터진 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역사를 역류할 수는 없는 거죠』

폭로 다음날인 20일 내곡동 안기부 신청사 준공식. 역대 안기부장과 중앙정보부장들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전임안기부장으로 이자리에 온 서동권씨의 눈에 장세동(張世東) 유학성(兪學聖)씨등 5공멤버들과 함께 담소하는 이현우씨의 모습이 들어왔다. 서씨가 이씨의 옷소매를 가만히 잡아 끌었다.

(서동권) 『연희동에 들렀어요?』

(이현우) 『아직 안갔어요. 그러찮아도 오후에 가볼 참입니다』

(서동권) 『연희동에서 많이 찾던데… 빨리 가보는게 좋겠어요』 이날 오후 2시 연희동. 노전대통령과 이실장이 마주앉았다.

(노전대통령) 『이실장, 박계동이 이야기한게 맞나?』

(이현우) 『저도 기억이 희미한데 우리 통장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노전대통령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금고에서 검은색 007가방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 재임 중 관리해 온 비자금 장부 4권과 수십개의 예금통장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노씨가 가방을 내려놓자 이씨가 조심스럽게 비밀번호 숫자를 맞췄다. 「629」 노전대통령이 명예혁명이라고 자랑했던 6·29선언을 기념해 이씨가 고른 비밀번호였다. 통장을 하나씩 뒤적이던 이씨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왜 그러나?』

『각하, 큰일났습니다. 우리것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장부를 없애야 될 것 같습니다』

『…』 한동안 넋이 나간 듯 침묵을 지키던 노전대통령이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비자금 장부를 한장씩 뜯어냈다. 노전대통령은 종이뭉치를 들고 파쇄기가 비치된 2층으로 올라갔다.

연희동 한 참모의 회고. 『어른이 이실장과 함께 방에 들어가더니 한참만에 얼굴이 붉어져서 나오셨어요. 「야 야∼, 그게 그거란다」하십디다. 그말씀을 들으니 눈앞이 노래지더군요. 어른은 그때까지 정말 모르셨어요. 돈관리는 이실장에게 일임하셨으니까요』

또다른 노씨 측근인사의 이야기. 『이부장이 외국에 갔다온 직후여서 상황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박계동이가 갑자기 흔드니 완전히 생각이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대답한 거죠. 아무튼 우리 돈이 아니라고 했는데 다음날 와서 맞다고 하니… 참 일이 코미디처럼 우습게 됐어요』<이태희 기자>

◎박계동 의원의 폭로 특급작전/고교후배가 盧씨 차명계좌 실토/이부영·장기욱 의원과 최종전략/점심시간 기습발표… 언론 앞장세워

『선배님,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통장에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습니다』

95년 10월16일 저녁무렵 서울 H호텔. 모처럼 한가하게 고교(보성고)총동창회에 참석했던 박계동(朴啓東·민주당) 의원에게 조그만 기업을 하는 후배 하종욱(河種旭·44·우일종합물류 대표)씨가 수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테이블 주변에는 다른 동창들도 여럿 있었지만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하씨의 말에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박의원이 하씨에게 로비로 나오라고 눈짓을 했다.

(박의원) 『아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하씨) 『거래은행 지점장 부탁으로 명의를 빌려주었는데 큰일 났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세금만 물게 생겼어요』

박전의원의 회고. 『하사장의 이야기는 사실 제가 대정부질문에서 발표한 내용 그대로였어요. 하씨는 처음부터 자기 통장에 입금된 128억원의 주인이 노씨인것을 알고 있었지요. 테이블에서 이야기 할 때부터 노태우비자금이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사람 말인즉 금융실명제에 이어 96년 1월1일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이뤄지는데 은행에 아무리 사정을 해도 계좌정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냥 놔두면 내년에 당장 세금만 7억원이 떨어진다는데 그친구로선 난감할 수 밖에요. 내가 「그럼 그 돈은 눈먼 돈인데 이자만큼이라도 빼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요. 「남의 돈 7억원을 뺄 수도 없지만 전주가 돈을 찾아가면 나중엔 어떻게 합니까. 세금을 7억원씩이나 내던 사람이 돈이 빠져나간 후엔 3,000만원정도로 정상적인 세금을 내면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당장 세무조사가 나올 것이 뻔하죠」라고 하더군요. 사업하는 사람 아닙니까. 거래은행과의 관계도 금이 갈 걸 걱정했어요. 하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틀림없다는 감(感)이 오더군요』

몸이 달은 건 오히려 박의원쪽이었다. 『하사장, 정 그렇다면 폭로하는 방법밖에 없어. 나도 나름대로 은행쪽을 확인해 볼테니 예금잔고조회표를 떼어다 줄 수 있겠어』

하씨는 순순히 승락했다. 다음 날 오후 8시 나이아가라호텔 커피숍. 하씨가 잔고조회표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하씨는 파문이 두려운 듯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사장 그래 가지곤 절대 해결못해. 이리내』 박의원이 잔고조회표가 든 서류봉투를 빼앗 듯 낚아챘다.

기막힌 우연일까. 호텔로비에서 하씨와 헤어진 뒤 박의원 앞에 나타난 사람은 같은 당 이부영(李富榮) 의원이었다. 국감준비차 이 호텔에 캠프를 차린 이의원이 마침 호텔에 있던 박의원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척을 한 것. 박의원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이의원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박의원, 지금까지 준비해온 대정부질의 내용을 다 빼고 이걸로 깔아 버리지』

박전의원의 이어지는 회고. 『폭로하기전에 하씨를 최종적으로 설득해야 했어요. 다음날 아침 하씨를 만날 때 이의원과 율사출신인 장기욱(張基旭) 의원까지 함께 나갔어요. 장의원은 하씨에게 닥칠 만일의 불이익에 대비한 법률고문역이었지요. 하씨를 설득한 뒤엔 최종 전략을 짰는데 언론을 이용하기로 했죠. 청와대나 안기부에서 먼저 눈치를 채고 하씨나 은행측에 압력을 넣으면 큰일 아니에요. 그래서 극비에 부치고 발표시간도 가장 취약시간인 점심시간을 택했어요. 기습작전이었죠. 브리핑이 끝나기 무섭게 기자들이 은행으로 달려가더니 계좌가 확인됐다고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그때 이미 승부는 나버린 거에요. 하지만 비자금사건의 1등공신은 제가 아니에요. 금융실명제가 없었다면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은 꼬리조차 밟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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