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미국 하원의 탄핵안 의결은 예상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우선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의회가 대통령탄핵을 결의한 파장은 국내외적으로 적지않을 것이다. 생각을 바꿔보면 「견제와 균형」 이라는 미국정치의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국론분열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여론이 클린턴의 성 스캔들과 이에 따른 위법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탄핵에는 반대했던 것은 지도력의 혼란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하원의 탄핵안 통과만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직무가 법적인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탄핵제도에서 하원의 결의는 소추이며, 상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탄핵결정이 있어야 대통령직이 정지된다. 200여년의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42명의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고, 지난 74년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원법사위의 탄핵결의가 나오자 하원에 탄핵안이 상정되기전에 사임하는 비극을 겪었다. 클린턴은 닉슨처럼 사임하기보다는 존슨처럼 상원의 탄핵안 부결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표류상태가 오래 계속될 경우 클린턴이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할 경우 클린턴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 그동안 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하던 여론조사 결과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탄핵안이 통과된 지금 더이상 혼란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바람을 탄다면 대통령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또한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향후 국제정세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킬 소지가 있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영국 캐나다 등 미국의 핵심우방을 제외하고는 미국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하원의 탄핵결의를 받은 상태에서 국제여론의 악화는 더욱 클린턴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클린턴의 정치적 운명은 미국인들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의 정치적 절름발이상태가 몰고올 국제적 파장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국제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이라크를 공격한 클린턴의 결정이 좋은 본보기다. 북한핵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공유한 한미관계를 생각하면 백악관의 지도력위기를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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