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 사회분위기속 정치·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비꼬기·시비걸기 등 확산/98년 문화계 최대 화두 떠올라/하지만 치졸한 흉내도 많은데…『뒤틀고 비꼬기』
올해 문화·사회 전반을 휩쓴 최대의 화두는 패러디(parody)이다. 기존 문화나 사회를 흉내내되, 이에 대해 강한 「대결의식」을 갖고 삐딱하게 접근하는 패러디가 대상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붐을 이루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냉소적인 사회분위기가 팽배하고, 자기 목소리를 여과없이 담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패러디는 하나의 「대항문화」로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패러디는 방송, 광고, 문학, 영화등 각 분야의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 최고의 관심을 모은 패러디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저널」임을 표방한 「딴지일보」. 디지털 조선일보를 패러디한 인터넷 신문으로 패러디라는 조류를 신세대안에 깊숙이 침투시킨 주인공이다. 지난 7월6일 창간이후 5개월여만에 하루 평균 3만5,000∼5만명의 독자가 몰리고 있다. 「김데중대통령, 기명사미 전대통령, 딴나라 캬바레 이헤창 명예 홀메니저와 좃순 주방장….」 각종 사회문제와 현안을 꼬집는 과정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과 황당무계한 단어, 소리나는대로 쓰거나 문법을 파괴한 도발적인 언어구사가 딴지일보의 인기비결이다.
딴지일보가 히트하자 인터넷에는 이와 유사한 패러디 사이트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는 검열의 잣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1인 운영이 가능한데다 전파력이 강해 패러디 신드롬의 주무대가 되고 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영화와 광고, 문학, 방송 등 문화 각 장르에도 패러디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패러디의 가장 큰 소재 제공처는 영화. 위대한 걸작, 유명한 작품을 모방하되 그 훌륭한 지위를 깎아내림으로써 풍자적 희극성을 노린다. 도망자 타이타닉 미션임파서블 브레이브하트 등 자그마치 24편의 대작들을 패러디한 미국영화「롱풀리 어큐즈드」가 최근 개봉된 것도 우리 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패러디 열풍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문학에도 패러디 바람이 강하다. 나뭇꾼이 선녀였던 아내를 학대하는 폭력남편으로 그려지는 「하늘여자」 등 구전동화를 패러디한 소설집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이 대표작. 외국 작품중에는 미국의 여성학자인 바바라 워커가 쓴 패러디 동화모음집 「흑설공주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펴낸 화제의 책 「네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우익들에게 보내는 신랄한 풍자. 월간조선 조갑제국장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 박정희 향수에 담긴 허위의식을 발가벗겼으며 한국사회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을 배꼽 잡게하는 개그로 만들었다.
이밖에도 대우자동차 마티즈 광고는 영화 「고질라」의 한 장면을 로열티를 지불하면서까지 완전히 패러디해 작고 빈틈없다는 컨셉을 강조했고 콤비콜라의 광고는 시리즈별로 10여편의 영화를 등장시켜 카피를 패러디했다. 비디오시장의 패러디 바람은 제목면에 집중돼있는게 특징. 작년 최고의 흥행작 「접속」을 패러디한 「접촉」, 올상반기 최고의 흥행기록을 낸 「여고괴담」을 패러디한 「폐교괴담」외에 「마누라 때리기」(마누라 죽이기), 「개같은 날의 정사」(개같은 날의 오후), 「미스콘돔」(미스터콘돔), 「과부들의 저녁식사」(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비디오는 대부분 제목만 모방했을뿐 진정한 의미의 패러디라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패러디는 창조적 모방이란 뜻을 갖고 있다. 패러디가 풍자와 다른 것은 단순히 세태를 비꼬는게 아니라 방송 영화 인터넷사이트 등 대상 원작을 내용에서 문체까지 충실히 이해하고 이를 뒤틀어서 모방한다는데 있다. 잘못하면 어설픈 흉내내기지만 잘하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깊다.
그러나 최근 홍수를 이루는 패러디에는 창조는 없고 모방만 있다는 비판도 없지않다. 전주 한일신학대 김성기 교수(문화사회학)는 『최근 패러디 붐은 상상력의 고갈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라며 『90년대 패러디는 형식면에서는 도발적이나 내용은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의미있는 작품을 재창조하려는 욕망은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의 패러디 작품들이 원작의 치밀한 표현방식과 내용에는 근접하지 못한채 그 껍데기만 베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패러디는 직설적 화법과 신랄한 공격으로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패러디 옹호자들은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의 경직성이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재미를 뒤섞은 통렬한 풍자로 세태를 바라보는 방법도 문화의 자양분으로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패러디라는 이름하에 저속한 풍자가 난무하는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문화평론가들은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허무맹랑한 내용과 원색적인 표현에 실망한 경우가 많다』며 『원작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이를 뛰어넘을 실력이 있어야 진정한 패러디가 나온다』고 강조한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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