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계도 IMF폭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당했다. 관객은 절반 가까이 줄고 뉴욕필, 모스크바필등 외국 유명오케스트라의 내한이 줄줄이 취소됐다. 공연기획사들은 정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그런 중에도 11월 한 달간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오페라 페스티벌은 사상 초유의 흥행폭발로 한국오페라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무용쪽은 유네스코국제무용협회의 98 세계무용축제등 공연은 많았지만 질이 낮았던 편. 프랑스 몽탈보무용단의 공연을 최고 무대로 꼽을만 하다. 올해 떠오른 신인스타 두 명을 소개한다.<오미환 기자> ◎발레리나 김지영/세계주요 콩쿠르 잇단 입상/해적·바리서 완벽 몸짓 오미환>
국립발레단의 막내둥이 김지영(20)은 올해 상복이 터졌다. 발레올림픽으로 불리는 미국 잭슨빌 콩쿠르 동상, 파리국제무용콩쿠르 듀엣부문 1등으로 세계 주요 콩쿠르를 두 개나 나꿔챘다. 한국발레협회 「올해의 신인상」, 월간 「객석」선정 「올해의 무용가상」도 그의 것이다. 관객과는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해적」, 창작발레 「바리」, 일본에서 도쿄발레단 합동공연으로 만났다.
무대에서 김지영은 자신감이 넘친다. 어떤 역이든 완벽하게 제 것으로 만든다. 만족스런 동작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연습하는 고집스러움,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는 뛰어난 감각에는 선배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그러나 스스로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며 『기본테크닉을 더 철저히 익혀 기초를 튼튼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예원학교 3학년 때 러시아의 명문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지난해 귀국하자마자 국립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 「노틀담의 꼽추」「돈키호테」「신데렐라」등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발레를 시작한 건 10세때. 동네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졸랐다.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어머니는 러시아까지 와서 딸의 바가노바 졸업공연을 보던 중 객석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임종을 못한 한이 사무친다고 한다.
발레를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표현하는 김지영. 부드럽고 앳된 표정 속에 감춘 단단함이 만만찮다. 클래식발레의 엄격함이 때로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절제된 동작 속에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학과공부에 쫓겨 춤출 시간이 모자란 게 안타깝다』며 『여건은 나쁘지만 비관하지 말고, 목표를 갖고 열심히 하라』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테너 김재형/호프만의 이야기 등 열연/매력적 음색·연기력 호평
오페라무대에 젊은 사자가 등장했다. 테너 김재형(25). 서울시립오페라단 「호프만의 이야기」 예술의전당 「코지판 투테」「카르멘」 세 편의 주연으로 열연, 개성있고 매력적인 음색과 자연스런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외국유학경험이 전혀 없지만 8월 뮌헨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했다. 오페라가뭄이 극심했던 한 해라 그의 맹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카르멘」 공연 중의 에피소드. 2막에서 몸을 구부리다 그만 바지가 튿어졌다. 아찔할 수 밖에. 관객에게 엉덩이를 들킬세라 엉거주춤 게걸음으로 움직여야 했다.
96년 서울대 음대 졸업후 바로 국립합창단에 들어가 올 여름까지 단원으로 활동했다. 내년에는 독일로 근거지를 옮긴다. 이탈리아 토리노극장과 2000년부터 오페라를 하기로 계약했고 프랑크푸르트 시립오페라단과도 교섭중이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 행복하다』는 그는 『욕심내지 않고 내게 맞는 작품으로 신중하게 경력을 쌓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가장 하고 싶은 오페라는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
가곡에도 관심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가곡 작곡가는 말러. 『상황과 성격이 정해진 오페라와 달리 가곡은 가수의 인격과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설명한다.
고교시절 교내 중창단에서 노래하는 그를 보고 성악을 전공한 선배가 권유, 고3때 성악을 시작한 늦깎이. 굉장히 부드럽고 고급스런 따뜻한 음색이 특징이다. 반면 냉혹한 소리를 잘 못내는 것을 자신의 단점으로 꼽는다.
10년 뒤 모습을 물어봤다. 『패기만만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가수로 남고 싶다. 그러면 스타가 안 되어도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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