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문제로 소란하다.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펼쳐져온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은 이제 전 문화계로 확산되면서 우리 문화 지키기로 성격이 바뀌어가는 양상이다. 미국문화의 세계지배에 대한 거부, 문화의 다양성을 지켜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생물종(種)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문화인들은 문화종(種)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제 영화는 문화의 중심이다. 「아름다운 시절」로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이광모(李光模) 감독이 말했듯이 영화는 그동안 문학이 맡아온 문화의 엔진이나 추진기관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산업 전반에 복합적으로 연계되는 21세기 영상산업은 지식기반산업의 중심이며 캐릭터·이미지산업, 관광산업의 중추이다.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압력은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부대산업까지 염두에 둔 전략이다. 한국과의 협상에서 성공하면 미국은 이를 다자간협상에 이용할 것이다. 프랑스의 영화인들이 우리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지지하고 나선 것도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미국과의 협상결과가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유로운 유통」을 내세우는데 대해 영화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유통」이란 곧 「불공정한 유통」이며 그 결과 한국영화는 고사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한해 동안 제작되는 전체 영화의 제작비가 「타이타닉」의 절반수준 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미국과의 경쟁을 이겨가며 정체성을 지켜가기란 지난한 일이다. 악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더라도 영화관을 잡을 수 없는 사태가 우려된다. 이미 한국영화를 상영하려고 미국직배사의 도움을 받는 현실이다. 그래서 문화인들은 스크린쿼터가 자유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보호제도가 아니며 시장독점을 막고 공정한 경쟁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크린쿼터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나 우루과이라운드의 서비스협상등 다자간협상에서 개별국가의 형편에 따라 예외가 인정된 제도이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국가들과 함께 「문화적 예외」를 주장해왔고 미국은 스크린쿼터나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중인 나라에 대한 각개격파전략에 나선 양상이다.
영화인들은 『우리 영화를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를 잘 모르는 단순하고 순진한 논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 반박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스크린쿼터문제를 계기로 우리 내부에서 따져 보아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우리 자신부터 연간 106일이라는 스크린쿼터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영화관의 허위신고는 오래 된 일이다. 지금도 3대 7인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상영비율이 앞으로는 1대 9, 아니 그 이상이 될지 모른다. 평일에는 한국영화를 돌리다 주말엔 외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들도 많다. 그런데 행정당국이나 업계의 감시·단속은 미약하기만 하다.
또 하나 한국인들은 한국영화를 얼마나 보고 있는가, 한국영화의 독창성은 얼마나 되며 상품성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영화의 자국내 시장점유율은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높아 25%수준이라고 하지만 재미있는 영화에 팬들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낙균(申樂均) 문화부장관은 16일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문제에 대해 문화적 예외조항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문화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아직 공식협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연내에 제4차 투자협정 체결협상을 갖고 이 문제를 협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화에 있어서 예외성은 남과 다른 차별성과 독자성이 없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의 뒷받침 없이 문화적 예외를 지켜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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