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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8년만의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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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8년만의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입력
1998.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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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긴 나를 무대위에 세웠다”/상상과 욕망,어리석음 자신이 본 자기모습 객체화/“세상 아름다움 알려주는 귀족주의가 문학의 길”『시를 피했다. 다시 꺼내보니 그 중에는 8년이 넘은 것들도 있다』. 황지우(46·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교수)시인이 오랜만에 시집을 낸다. 금주 발간되는 그의 다섯번째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발행)는 「게 눈 속의 연꽃」 이후 8년만에 묶어내는 것이다.

황씨는 『그동안 잘 놀았다.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80년 등단 이후 시대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이른바 「해체시」로 불리는 파격적인 형식, 비어·욕설이 난무하는 시어로 표출해온 황씨. 한 시대가 저물고 세상이 또 한번 바뀔 동안 그는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으로 들어갔다. 말 대신 진흙을 다듬어 조각전도 열었고, 대학교수로 안정된 자리도 잡았다. 이번 시집에 묶인 72편의 시들은 그동안 정신의 궤적인 셈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아서/아내가 나갔기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놀았다/…/사람이 喜劇(희극)이 되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 있을까마는/그러므로 無爲(무위)는 내가 이 나머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랄까」. 연극으로 공연되고, 올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신인작가의 장편소설의 테마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 그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日記(일기)」의 부분이다. 그는 90년대 중반의 우리 사회를 풍자하면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복수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천함보다야/無爲徒食輩(무위도식배)가 낫지 않겠는가!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하루종일/격조 있게, 놀았다」고 야유한다.

세상의 변화와 스스로의 나이먹어감은 표제작을 낳았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면서 그는 어느 날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있을 거라 말한다.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수위)만을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다/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무위도식배와 폐인으로 무대에 세운다. 평론가의 해설 대신 시집의 발문을 쓴 소설가 이인성씨는 황씨의 이런 모습을 『엄살이자, 고상하게 말하자면 스스로의 나르시시즘을 객체화한 것』이지만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차없다. 상상과 자신의 욕망, 욕망의 뿌리, 그 뿌리의 어리석음까지를 무대화해 드러낸다』고 말했다.

황씨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발표하고도 끊임없이 새로 다듬고 고쳐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장인정신을 그는 최근 열린 「2000년을 여는 작가포럼」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과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만 있을 필요가 있는, 신분 없는, 다만 정신일 뿐인 귀족주의. 나는 그것이 문학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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