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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새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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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새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입력
1998.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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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으로 어루만진 ‘노년의 삶’/어머니같은 손길로 고단한 생의 상처 치유박완서 소설의 힘은 무엇일까. 아무리 누추한 삶이라도,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긍정하도록 이끌며 생의 미덕을 발견하게 하는데 있지 않을까.

『늙어도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스스로 늙었다며 너무 타박하지 말라는 노작가 박완서(67)씨. 우리 문단의 큰어머니로 불리는 작가가 일곱번째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창작과 비평사 발행)을 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이번 창작집에 묶인 10편의 소설에는 그 연륜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회갑을 앞둔 과부(「마른 꽃」)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는 딸(「환각의 나비」) 죽음을 기다리며 자신의 신산했던 삶을 되돌아보는 노인(「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꽃잎 속의 가시」) 등 대부분 작가와 같은 노년들이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남편이 시골학교 교장인 탓에 떨어져 살다가 아들의 대학졸업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초로의 부부다. 아내는 졸업식에서 안사돈에게 은근한 모욕을 당하고, 매사 멋대가리라고는 없이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남편에게 괜한 경멸감마저 가진다. 「그녀에게 아들을 빼앗긴 상실감은 마치 허방을 밟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순탄한 길을 걷다가도 휘청거릴 나이에 이런 허방이 숨어있을 줄이야. 허방치고는 너무도 깊은 허방이었다」. 나이들어 주책같은 허방을 느낀 그녀는 『갈 데가 있다』며 남편을 잡아끈다. 택시를 잡고 남편을 밀어넣었다. 「얼떨결에 올라탄 남편 곁에 앉자 어디 경치좋은 러브호텔로 가자고 외눈 하나 까닥 안하고 말했다」.

늙은 그녀가 남편을 러브호텔로 잡아끈 것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그녀는 러브호텔로 남편을 밀어넣고 나서는 그가 잠들기에 충분한 시간을 흐르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으로 보내다가 방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헐렁하게 낡아빠진 팬티만 입은 채 코를 골고 자고 있는 남편의 정강이에 나 있는, 무수하게 모기에 물린 자국을 본다. 「도대체 어떡하고 살기에 제 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차근차근 씹어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가진 상처를 보여주고 그것을 치유해주는 어머니의 손길 같은 글이 바로 박씨의 소설이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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