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으레 불우이웃을 돕자는 소리가 나온다. 방송마다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뉴스마다 사회복지시설의 썰렁한 세밑을 전하며 사랑을 호소한다.보육원 양로원 등의 올 연말은 예년보다 더 쓸쓸하다고 한다. 살기가 어려워진 탓인지 인정이 전같지 않다며 야박한 세태를 은근히 꾸짖기도 한다. 『맞아』하고 반성도 하지만 잠깐 생각을 틀어보면 『이건 부당한데』 싶다. 국민을 돌보는 건 나라의 기본책무인데, 정부는 뭐하고 늘 국민에게 죄책감과 의무를 떠넘기나.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국민의 얄팍한 주머니만 쳐다보며 온정을 기다릴 것인가.
이웃을 돌보는데 지위의 높고 낮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렇지도 않은 것같다. 정치인이나 기업가 등 유명인사의 성금은 누가 어디에 얼마를 보냈다고 눈에 띄게 보도된다.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도 금액순으로 소개된다. 보통사람들의 작은 정성은 얼마나 걷혀서 어떻게 쓰였는지 나중에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기를 수십년째, 선량한 국민들은 올해도 지갑을 연다. 길거리 자선냄비에 꼬깃꼬깃한 지폐를 넣고 모금창구에 줄을 서고 꼬마들은 저금통을 깨뜨려 동전주머니를 들고 온다. 그런 인심을 겨냥해 이웃돕기를 빙자한 가짜 모금을 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남을 돕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것은 자신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혜택이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는 일종의 보험과 같다. 남에게 덕을 베풀면 복을 받는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이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뜻밖의 재난을 당하거나 해서 내가 불우이웃이 되면 그땐 누가 날 도와주나. 전통사회에서는 대가족과 마을이 울타리가 돼줬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개인의 불행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 나락으로 직결된다. 얼마나 아슬아슬한가. 몸과 마음이 춥고 배고픈 사람들 뿐만 아니라 툭 하면 각종 캠페인성 모금에 줄을 서야 하는 국민도 불우이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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