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축소, 폐지문제로 영화계가 시끄러운 요즘. 그 분위기에 휩싸여 우리가 꼭 되짚어봐야 할 안타까운 사건 하나가 묻혀 지나간다. 지난 달 26일, 제주도에서 있었던 「이재수란」(감독 박광수)의 조명 제2조수 박연일씨와 조명탑차 운전기사 박희호씨의 죽음. 둘 다 스물일곱살이었다.인재(人災)였다. 야간촬영을 이틀 앞둔 저녁, 둘은 35톤 크레인에 설치한 조명기를 시험하기 위해 바구니를 타고 올라갔다. 밑에서 조명감독과 발전차기사가 크레인 기사에게 『안전할 때까지 내려 보라』고 요구했다. 내려오던 크레인이 두 번 멈칫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고정하는 날개도 펴지 않았고, 버팀대도 한 쪽은 4m, 다른 한 쪽은 1m로 기울어 있었지만 눈여겨 본 사람이 없었다. 크레인에는 무려 5대의 조명기를 설치했다.
「마지막 방위」촬영때도 스턴트맨이 죽고, 「남자의 향기」의 조명기사가 다쳐도 영화계는 불운으로 여기고 지나간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 전문가를 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작진에 대한 보험도 들지 않는다. 10편이면 2편도 안된다. 600여만원이 아까워서다. 그러면서 주연배우에게는 2억원의 출연료를 선뜻 준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등 선진국에서는 보험을 들지 않으면 촬영을 못한다. 구경꾼에 대한 보험까지 들어야 한다. 다행히 「이재수란」은 보험을 들었다.
영화에서 조명팀의 공헌은 영화가 끝날때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 한 줄 적히는 것으로 마감된다. 그때쯤이면 관객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조명팀이 받는 돈은 작품당 2,000만∼ 3,000만원. 조명감독, 제1조수의 몫(75%)을 빼면 제2,3조수는 최저 생계비도 못 받는다. 그래도 영화가 좋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딘다. 그들 없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씻김굿을 치른 「이재수란」은 2일부터 촬영을 재개했다. 제작사(기획시대)는 이 영화를 두 젊은이에게 바치겠다고 한다. 영화는 시작전 그들의 이름을 올리고 명복을 빌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씻어내야 할 것은 한국영화 촬영현장의 안전불감증이다.<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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