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서 총소리조차 안들리다니…/사이렌 軍발표보다 50분전 울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소대장 김훈(金勳·25) 중위의 타살의혹은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의 분석 뿐만 아니라 김중위와 함께 근무했던 한 전역병의 양심고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보취재팀이 13일 김중위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증언녹취록에서 이 전역병은 『군당국의 수사발표는 내가 직접 보았던 상황과 너무 차이가 난다』며 『나의 이상형이었던 김중위 사망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갖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JSA 2소대에 근무하다 올해 전역한 한 사병을 끈질기게 설득, 김중위 사망 전후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증언을 얻어냈다. 유족들이 정리한 이 전역병의 증언 일부를 요약했다.
<10월7일에 이은 9일 2차면담>
(김중위가 죽기전)구타사고로 모 병장등 여러명 전출갔다. 사고후 미 수사관이 오기전 미군대대장등이 숨진 김중위 옷에서 수첩을 가져 갔다. 4월초 재수사때 진술서 작성은 옆에 있던 동료병사에게 시간을 물어서 썼다. 벙커내에서는 발짝 소리까지 들리는데 (수사발표처럼)총소리가 안났다는 것이 이상하다. (사건전)무좀이 안생기는 군화 등 물건(보급품)을 외부에 팔아 먹은 비리가 드러났다. 모병장은 성질이 불같고 근무때 반드시 해야하는 북괴군촬영을 하지 않아 소대장이 별도로 불러 교육했다. 이 병장이 각종 상황일지, 소대일지작성을 통제했다.
<10월16일 3차면담>
권총은 수령·반납시 반드시 본인이 무기고에서 직접 수령하고 우발사고를 대비, 소대장에게도 빌려 주지 않는다. 예비권총이나 휴가자권총이 있는데 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김모일병의 권총을 소대장에게 빌려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2월20일 권총수령시 기재한 종이(총기불출대장)가 개인별 도착시간순으로 기재돼 있지 않다. 「M9」라고 기입한 글씨 4개와 권총번호 4개의 글씨체가 동일하다. 장비수령은 본인이 직접한 후 기재를 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글씨체가 틀려야 원칙이다. 수령대장을 보면 전체가 다시 누군가에 의해 작성된 것 같다.
<10월18일 4차면담>
사고 당일 모 일병이 면허시험 보러 간다고 나에게 왔다. 그때 비상사이렌이 울렸다. TOC(상황실)에 있던 내가 동료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지금 몇시냐고 묻자 「11시40분입니다」라고 대답했다(국방부 발표는 12시30분). 사건후 선임하사(김중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현장인 벙커3 커튼문밖에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비비더니 화약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러더니 병사들이 못오도록 통제하라고 했다. 벙커3 내부에서 (이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데 자기행동에 대한 위장으로 생각했다. 당시 나는 현장을 보전하고 있었다. (김중위)시신은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누워서 잠자는 것 같았다.
<10월22일 5차면담>
소대장(김중위)은 문제점을 꼭 기록하는 습성이 있었다. 사고 당일 식당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는 데 웃으며 『야, 너희들만 먹냐, 나도 먹자』면서 한 젓가락 뜨고 10시15분께 나갔다(수사발표는 10시45분). 순찰복장이었고 노트 2개와 모토롤라(무전기)가 있었다. (김중위를 처음 발견한)모일병이 식사차가 왔다며 아래막사윗막사식당타워1타워3타워9식당TOC벙커5벙커4벙커3 순으로 식사집합을 알리려 다녔다고 하는데 이상하다. 윗막사는 야간근무자들이 취침하고 있어 식사를 안하고 내가 있던 아래막사에는 오지 않았다. 또 타워1은 제일 높아 다른 타워가 다 보이는데 돌아다녔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박천호·이태규·손석민 기자>박천호·이태규·손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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