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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로 수뢰사건:하(문민정부 5년: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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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로 수뢰사건:하(문민정부 5년:67)

입력
1998.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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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에 치명타” 설득에 張 “뇌물받았다”/잠적 11시간만에 검찰출두 해 “정치자금이다” 완강/조사만료 8시간前 “어른” 꺼내자 “볼낯없다” 말문/“전처 정신병원 강제 입원” 野 공세에 청와대도 大怒국민회의의 「장학로 치부사건」 폭로가 있었던 96년 3월21일 오후 8시 서울지검 1층 로비. 잠적했던 장씨가 11시간만에 검찰청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국민회의 발표는 사실이 아닙니다. 내 결백이 곧 밝혀질 겁니다』 장씨는 여유만만했다. 설마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표정.

주임검사인 박종환(朴鍾丸·현 부산고검검사)검사방에서 곧바로 조사가 시작됐다. 장씨의 첫마디. 『검사님, 국민회의가 선거때문에 물고 늘어지는데 각하께서 모든 것을 빨리「클리어」 하라고 해서 왔습니다』

긴장된 얼굴의 박검사가 거두절미하고 정곡을 찔러갔다. 『김미자씨 재산 37억여원 중 장실장님이 준 돈은 얼마입니까』

(장씨)『그중 일부만 내거에요. 하지만 나머진 나도 몰라요. 그 여자 원래 돈이 많아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급작스런 장씨의 출두에 당황한 건 검찰이었다. 아직 「손님」을 맞을 준비가 돼있지 않았기 때문. 검찰은 완전히 「빈손」이었다. 이날 오후 서울지검 황성진(黃性珍·현 서울고검 검사)특수1부장이 박검사를 급히 불렀다.

(황부장)『박검사, 장학로를 아나』

(박검사)『모릅니다』

(황부장)『밤에 들어올테니 준비해라. 왜 오는지는 신문에 났으니 보고…』

당시 수사팀관계자의 회고. 『갑자기 장씨가 들어온다고 하니 생난리가 났어요. 검찰 생리상 권력핵심부에 대한 정보수집은 잘 하지 않아요. 괜히 손댔다가는 본전도 못찾기 쉽상이니까요. 장씨도 청와대 사람 아닙니까』

최환(崔桓) 서울지검장 주재로 열린 대책회의. 『좌우간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어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짐은 검찰로 옵니다』 정권안보와 관련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조자룡 헌칼쓰듯」능수능란하게 처리했던 최검사장의 얼굴도 어두웠다. 코앞에 닥친 총선일정이 수사팀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검찰관계자의 기억. 『참 막막했어요. 48시간동안 장씨와 붙어보고 정 안되면 돌려보낼 수 밖에요. 만약 그랬다면 검찰은 웃음거리가 됐겠죠』

수사진은 장씨조사와 재산추적 두팀으로 나뉘었다. 재산추적은 길태기(吉兌基·현 충주지청장) 검사가 맡았다. 하지만 길검사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동거녀 김미자(金美子)씨 일가가 종적을 감춰버린 것.

박검사가 장씨를 슬쩍 떠보았다. 『김미자씨 지금 어디있어요?』

장씨의 대답. 『나와 함께 있었는데요.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 있을거에요』

새벽공기를 가르며 수사팀이 쏜살같이 달려가 김씨 4남매를 전원 연행했다. 하지만 이들도 난공불락. 김씨는 「모범답안」을 외우듯 엉뚱한 대답만 늘어놨다. 『장실장이 무슨 돈이 있어요. 내가 모은 돈이에요. 84년쯤 아리랑다방을 운영할 때 알게된 일본인 사업가 다나카상과 5년간 지내다 1억8,000만엔 쯤 되는 돈을 받아 장농속에 넣어두었습니다. 92년쯤 남대문시장 암달러상에게 환전했는데 11억가량 됐어요. 그사람은 89년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물론 김씨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검찰도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알고 있었지만 반박할 여유도 증거도 없었다. 「다나카상 이야기」는 검찰의 중간브리핑때도 버젓이 등장했다.

전쟁같은 하루밤이 지나갔다. 수사팀의 얼굴도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적반하장격으로 장실장은 『주임검사가 「터프」하다』며 담당검사를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 아직도 장실장은 얼른 조사를 마치고 나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무렵 장씨는 뇌물죄보다 더 무서운 「괘씸죄」로 이미 청와대의 눈밖에 나있었다. 국민회의가 장씨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전처인 정모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킨 의혹이 있다고 몰아부친 전략이 적중한 것.

이날 아침 청와대. 『장비서가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왜 미리 말을 해 주지 않았죠』

손명순(孫命順) 여사가 비서들에게 잔뜩 찌푸린 얼굴로 역정을 냈다. 옆에 있던 YS. 『장군이 정말 조강지처를 그랬나… 장군 이친구 당장…』

그러나 장씨는 물론, 전부인 정씨까지 강제입원 사실을 부인한다. 장씨의 설명. 『명백한 오해에요. 사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건 정씨 집안에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한 겁니다』

전부인 정씨의 증언. 『장실장이 직접 저를 입원시킨 것은 아니에요. 사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어요. 저쪽(국민회의)에서 그렇게 봤지.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집안 형제들이 장실장에게도 입원문제를 상의했다고는 하더군요』

다시 서울지검 조사실. 『당신 정말 명절때 떡값받은 것도 없어요!』. 박검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장씨)『그건 있어요』

(박검사)『그럼 그거라도 그려봐요』

박검사가 장씨의 앞에 백지를 던졌다. 그러나 장씨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장씨)『기억이 안납니다』

(박검사)『업무일지 있어요?』

(장씨)『사무실에 있습니다』

(박검사)『직접 여직원에게 전화하세요. 팩시밀리로 보내라고요』

띠리리∼. 50여장 분량의 장실장 업무일지가 속속 팩시밀리를 타고 들어왔다. 그간 장씨의 일정은 물론 장씨와 접촉했던 수백명의 명단과 연락처가 검찰에 넘겨지는 순간이었다.

접촉한사람 명단이 장씨 앞에 놓여졌다. 장씨가 몇명을 손으로 짚다가 고개를 저었다.『이건 정치자금입니다』. 박검사의 질책이 뒤따랐다. 『당신이 정치인이요 공무원이요. 당신이나 나나 공무원 아닙니까. 공무원이 돈받으면 뇌물이지 정치자금은 무슨…』

얼마가 지났을까. 낭보를 기다리다 지친 황부장이 조사실로 달려왔다. 『박검사, 니는 좀 나가 있으라』 박검사를 내보낸 뒤 황부장의 설득작업이 시작됐다. 『장실장. 내도 경남고요. 당신이 그러면 되나. 보다 못해 하는 소린데 당신이 그러면 30년간 모셔온 각하는 어찌되노. 문제가 커진데이』

황부장의 설득은 주효했다. 장씨는 「어른을 뵐 낯이 없다」며 W건설 회장등 3개 기업인에게 1억4,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순순히 털어놨다.

『휴∼』. 수사팀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사시간만료(48시간)를 불과 8시간 앞둔 상황. 검찰은 즉시 기업인들을 불러 조사한 뒤 장씨를 알선수재혐의로 구속했다. 이틀간의 벼락치기 수사였다.

장씨의 기억. 『선거가 코앞에 닥쳤잖아요. 내가 빨리 기소되는 것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 때문에 선거에 지면 평생 그 멍에를 어떻게 감당하려구요』

며칠뒤 서울지검 10층 박검사 사무실. 방안에서 죄수복을 입은 장씨와 말쑥한 양복차림의 중견업체 대표 A씨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무슨 부탁을 했다 그래요. 청와대 식구들 식사라도 하라고 용돈 준거지』

『형님, 이제와서 그런 걸 따진들 무슨 소용있어요. 내 말이 맞아요. 내가 하자는대로 하십시다. 그게 대통령을 돕고 형님도 사는 길이에요』

장씨는 마치 수사검사라도 된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에게 돈을 준 A씨를 설득했다. 장씨는 완전히 딴사람이 돼 있었다. 검찰관계자의 회고. 『우리는 장씨의 충성심을 자극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다 털어놔라. 기소한 뒤에 그냥 넘어갔던 사항이 돌출되면 그땐 정권이 무너진다」고 얼러댔어요. 나중엔 장씨가 더 적극적이었죠. 수사검사와 명부를 가져다놓고 낑낑거리며 옛기억을 되살리려고 했어요. 김미자씨는 정말 독하게 버텼는데 장씨가 「이봐 내가 다 이야기했어. 검사님께 다 말씀드려」하니까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더군요. 장실장은 충성심 하나만은 대단했어요』

검찰은 장씨 구속후 장씨의 부정축재 규모가 27억6,000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나 이중 대가성이 분명한 7억여원만 기소했다. 나머지는 소위 「떡값」과 출처불명의 돈으로 기소대상에서 제외해 『청와대 떡값은 21억원이나 되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검찰관계자의 회고. 『발표상의 미스였어요. 장씨는 정말 누구에게 돈을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했어요. 밥 먹자고 해서 나갔다가 200만∼300만원씩 받아와 책상서랍속에 넣어둔 거였죠. 솔직히 못 밝힌다고 했으면 되는데 완벽하게 분류한다고 떡값얘기를 꺼내 회초리를 맞은 거에요』

반면 사건을 검찰이 과대포장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민주계인사의 기억. 『당시 대통령 친구분까지 영문도 모르고 검찰에 불려갔는데 다짜고짜 장실장에게 뭐 부탁한 게 없느냐고 묻더랍니다. 그양반이 「내가 대통령의 친구요. 부탁할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직접하지 왜 어린애에게 이야기 하겠소」했더니 몰라뵈었다며 뒷문으로 나가라고 했다더군요』

한 검찰간부의 회고. 『당시 우린 장씨의 수입이 어쩌고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일단 축재액을 최대한 늘려야 했어요. 당시 국민회의는 장실장이 뇌물을 받아 청와대자금으로 썼다고 몰고나갈 기세였어요. 대통령이 칼국수 먹는다고 자랑하는데 밑에선 뇌물받아 청와대 경비로 썼다면 대통령은 뭐가 되나요. 그 사건은 장씨의 개인비리 사건으로 구도를 잡아야 했고 사실도 그랬어요』<이태희 기자>

◎張씨 사건 그이후/8개월뒤 석방… YS,접촉금지령/DJ 폐단절감 ‘안살림’ 家臣에 안맡겨

청와대 안방에서 터진 장씨 사건은 가신정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인들은 장씨에게 왜 돈을 주었을까. 검찰관계자의 설명. 『대통령의 의중이 뭔지, 청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특급정보에요. 대통령의 기침소리도 정보라면 정보 아닙니까. 또 대통령을 옆에서 모시니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면 고마운 거죠. 특정사안이 걸릴 때 가신그룹의 수석비서관에게 줄대기는 뭣하고 만만한 장실장을 찾은 거죠. 물론 대부분은 용돈이나 하라고 주었지만 청와대에 오면서 액수가 10배이상 뛰었더군요. 장씨에게 돈을 준 건 기업인들 뿐 아니에요. 정치인이나 장차관도 고생한다고 봉투를 건넸다고 하는데 이름을 밝히지는 않더군요』

장씨 본인의 이야기. 『검찰은 받은 것만 문제시하고 도움준 건 묻지 않더군요. 민주산악회 통일민주당 지인들 중 내 도움 받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과거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게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주변 사람관리도 통치수단인데. 우릴위해 30∼40년 고생한 사람들 아닙니까. 원로들을 중국여행도 시켜드리고 입원비와 자녀들의 학비도 대고 했죠. 아는 사람들끼리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그런 것이 없다면 도대체 사는 의미가 뭐겠습니까』

장씨 사건의 교훈을 가장 뼈저리게 받아들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로부터 2년여 후 대권을 잡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장씨 자리였던 제1부속실장에 미국 정치학박사학위 소지자인 엘리트 정치지망생 고재방(高在邦)씨를, 홍인길(洪仁吉)씨의 자리였던 총무비서관에는 아예 여성인 박금옥(朴琴玉)씨를 임명했다. 모두 가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장학로사건은 화약고를 터뜨렸던 DJ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 셈이다.

장학로씨에 대한 YS의 분노는 그에게 느꼈던 정만큼이나 깊었던 것 같다. 민주계와 청와대에 장씨 면회금지 지시가 떨어졌고 비서진에 대한 뒷조사로 청와대엔 찬바람이 불었다.

청와대 모인사의 회고. 『청와대 사람들 재산조사를 하는데 얼마나 샅샅이 뒤지던지… 오죽했으면 안사람이 학교에서 받은 연구비까지 왜 재산등록 때 신고안했느냐고 문제 삼더군요』

시간이 약이었을까.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장씨는 상고를 포기했고 96년 11월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장씨는 20년전부터 근육이 없어지는 희귀병인 진행성 근이영양증(筋離營養症)을 앓고 있었는데 당시엔 왼쪽 다리에서 시작해 어깨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최형우(崔炯佑)씨 등 민주계인사들이 YS에게 『이대로 놔뒀다간 생명이 위험하다』고 진언하며 장씨의 석방에 팔을 걷어부쳤고, DJ도 장씨의 석방에 「아그레망」사인을 보내 빗장을 풀자 YS도 못이기는 척 석방조치를 한 것.

장씨는 재판당시 약속했던 것처럼 현금재산 12억원을 농어촌청소녀 육성재단에 기탁, 사건 당시 손가락질 받았던 장씨의 검은 돈은 매년 100여명의 학생들의 학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장씨는 요즘 목동 아파트에서 김미자씨와 함께 외부활동을 삼간 채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 장씨 이야기. 『솔직히 청와대 들어갈때 대통령을 퇴임후에도 모셔야한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어른을 찾아뵙지는 못했지요. 아직 복권이 안됐지만 불만은 없어요. 다 지난 일인데…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IMF가 터져 보류했어요. 남들이 또 뭐라고 그럴지 몰라서요. 병을 고칠지는 제쳐두고라도 진찰이나 받아 봤으면 원이라도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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