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이래 최대의 국가위기라 불리는 IMF경제난국과 극도의 불협화음을 연출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에 있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작년 말이나 올해 초에는 그래도 자성을 하고 고통을 감내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일년여가 된 지금 정치권은 당리당략과 무능의 구태를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으며, 대기업들은 관치와 밀실경영에 길들여진 나머지 과감한 경영혁신과 자발적인 기업 구조조정에는 관심도 없고 또한 능력도 없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과 일반 국민들은 자신들의 몫 챙기기에 급급하여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렇듯 사회 각 부문이 질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한국 역사의 수레바퀴는 점점 더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심히 불안하기만 하다.현재 우리 사회는 흩어진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구심력이 절실하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슬기롭게 대처해 왔다. 국란이나 내외환에 시달릴 때에는 호국불교나 이순신장군이나 김구선생같은 영웅이 등장하여 이를 극복하였고, 때로는 덕과 인이라는 유교적 통치이념이나 그 사회내부에 있는 원로들의 슬기로움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전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종교도,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카리스마적 영웅도, 그리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유교적 질서인 원로도 더 이상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사회는 무이념 무질서 무도덕 무기력이라는 4무 현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국가 및 민족통합을 위한 구심점이며, 이 구심점을 향하는 힘은 대학의 올바른 자리매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해방 이후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교육과 더불어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한 교육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대학의 확장과 발전에 의하여 신장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시대조류에 맞는 교육을 시켜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국가발전의 산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연구와 면학에 열중하지 않는 풍토, 실용화하지 않은 교육, 백화점식 특성없는 학과, 방만한 경영, 거기다가 일부 지식인들의 도덕적인 변질 등이 국가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자기 비하일까? 우리 대학은 오랫동안 현실에 안주하고 지적 권위만을 내세운 나머지 자기성찰과 발전에 나태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창조적 비판과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하여 대외적으로 외국의 지식인 및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칼 야스퍼스가 지적한 대로 우리 대학은 교수나 학생이나 「지적 귀족사회」의 특권만을 향유해 왔지 그 책임과 임무의 수행에는 무관심해 온 것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국가경쟁에서 타국에 앞서갈 수 있겠는가? 대학이 국가미래를 가늠하는 척도라면 이제 우리 대학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대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오랫동안 학문의 철학적 이상과 사회의 변화에 따른 현실적 요구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해온 대학은 이제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동시에 현실에 부응하는 중용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대학이 이러한 환골탈태의 모습을 사회에 먼저 보여줄 때 위기극복의 서광은 점차 가시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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