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근엄하게 보냈던 공자도 단 한번 농담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 자유(子遊)가 읍재(邑宰)하던 곳에 갔을 때 공자는 제자가 작은 고을을 예(禮)와 악(樂)으로 다스리는 것을 보고 내심 흐뭇해서 다음과 같이 웃으며 말하였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이 말은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어찌 큰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가 필요한가하고 묻는 말이다. 물론 농담이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닭을 잡는데 어찌 소를 잡는 칼을 쓰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은 작은 목적을 위해 너무 거창한 준비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지금 영화계의 모든 인사들과 국민의 정부관리들은 닭잡는 칼(鷄刀)이냐, 아니면 소잡는 칼(牛刀)이냐의 웃지못할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일수 「106일」의 스크린쿼터를 고수하려는 영화인들과 이를 「92일」로 줄이려는 관리들과의 한바탕 힘겨루기 싸움 때문이다. 물론 1년에 106일을 반드시 극장마다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에서 불과 14일만 양보해서 92일로 축소하는 것이 어째서 영화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14일의 단축을 요구하는 행정당국 뒤에는 두 가지의 음모가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자유시장원리」를 내세우며 스크린쿼터의 폐지를 요구하는 미국의 야욕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는 IMF시대를 맞아 외국자본의 투자유치를 위해서 한미투자협정이라는 정치적 가시효과를 위해 한국영화를 속죄양으로 삼아 이를 양보함으로써 「한국영화 죽이기」의 사석작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음모 역시 엿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 있어 영화는 자신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전염시킬 수 있는 최고의 복합광고시스템이었다. 이미 할리우드의 양키영화는 우리 영화 시장의 80%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한때 유럽영화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가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며 일반통상교섭에서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매체들을 제외시키며까지 미국에 강력하게 대항하고 있는 것은 단지 프랑스가 유럽영화의 탄생지이며 프랑스국민들에게 자국 영화를 지키려는 폐쇄성 때문만은 아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영화야말로 전 지구촌에 있어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가 스크린쿼터를 사수해나가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는 마지막 전략적 교두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이 IMF체제의 경제적 약점을 이용하여 14일의 단축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말해서 강대국답지 않은 소아병적 태도이다. 왜냐하면 스크린쿼터야말로 우리 영화의 마지막 녹색지대이자 그린벨트이며 또한 할리우드영화에 맞설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이를 밀고 나가려는 행정당국의 어리석음이다. 한푼의 달러가 소중한 경제관료들에게 영화는 한갓 심심풀이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둔 미래에 있어 영화는 문화, 언어, 정보, 지식을 창출하고 표현해내는 고도의 부가가치를 지닌 미래산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포기한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과 꿈을 포기한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인 106일의 스크린쿼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단 하루도 줄여서는 안될 최후의 자존심이다.
근엄한 공자는 닭을 잡는데 어찌 소칼을 쓰느냐고 껄껄 웃으며 농담하며 말하였다.
스크린쿼터를 한미통상협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행정당국자들이야말로 닭을 잡는데 있어 엉뚱하게도 소잡는 칼을 사용하려는 웃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지하에 묻힌 공자도 가가대소(呵呵大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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