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대 늦깎이학생들 이웃돕기 성금 마련『이제야 배움과 이웃사랑 실천의 기쁨을 알 것 같아요』
9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장지동 한림여자실업 중고등학교는 때 아닌 장터로 변했다. 복도와 교실마다 옷가지와 각종 생활용품, 음식과 특산품들이 넘쳐 흘렀다. 이 학교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젊은 시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여성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정규교육기관.
20대 새댁부터 60대 할머니까지 「늦깎이 아줌마학생」들이 마련한 「불우이웃 및 국군장병 돕기 바자」는 발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성황이었다. 평소 숨소리를 가라앉히며 교과서와 씨름하던 1,500여명의 주부들이 이날은 책가방 대신 가전제품과 장롱 속 옷가지, 재활용품 등을 들고 나왔다.
서울 면목동에서 두부공장을 하며 중학 1년 과정을 배우고 있는 김재순(48)씨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순두부 3박스를 팔아 성금을 마련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는 2학년 3반 박진숙(52)씨는 새 옷과 재고품 등 100여벌을 내놓았다. 아이들을 학교보낸 후 따로 책가방을 챙기는 게 가장 기쁘다는 한심축(40)씨는 밤을 꼬박 새워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 40여장을 팔며 10대소녀처럼 좋아했다.
주부학생들은 이날 모은 1,000만원의 성금을 11일 송파지역 소년소녀가장 10세대의 장학금과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이학교 임형숙(林亨淑·26) 교사는 『수업시간에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질문을 하는 주부 학생들은 눈빛부터 다르다』고 이들의 의욕을 전했다.
이현만(李賢滿) 교장은 『IMF사태로 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지고 입학생도 줄어들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쁜 일손을 쪼개 책장을 넘겨 온 만학도 아주머니들은 배움의 기쁨에 더해 이웃사랑을 실천한 이 날이 마냥 기쁜 것 같았다. (02)4006201<김호섭 기자>김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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