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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호 ‘상상력의 보물창고’·정과리 ‘문명의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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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호 ‘상상력의 보물창고’·정과리 ‘문명의 배꼽’

입력
1998.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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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문학,새 길은 어디에…/두 문학평론가의 문화·문명 읽기/이남호 ‘상상력의 보물창고’­각국 전래민담 현대적 해석.문학의 새 에너지·방향성 모색/정과리 ‘문명의 배꼽’­컴퓨터화 사회 정면분석 비판.문학의 본질 되살리기 호소「낡은 문화의 심장이자 새 문명의 잠재적 헛간인 곳에 갇힌 자」 이 말은 누구를 이르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정과리(40·충남대 교수)씨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심장」이었던 「헛간」은 문학이고, 그것을 비평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신은 그 곳에 갇힌 자라는 것이다.

「최근의 소설들은 건강하고 위대한 정신의 양식이 되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병들고 쇠약한 모습을 보여줄 따름이다」. 역시 문학평론가인 이남호(42·고려대 교수)씨는 또 이렇게 말한다.

공히 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한 40대 초반의 무게있는 평론가들이 본업인 문학비평이 아닌 샛길에서 쓴 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한국문학 상황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우회(迂廻)이다.

이씨의 「상상력의 보물창고」(현대문학사 발행)는 부제「이남호의 세계민담기행」에서 알 수 있듯 세계 각국의 전래민담 52가지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별주부전」이나 「토끼와 거북」이야기는 옛날 남미 아마존 강가의 숲 속에 나오는 토끼의 선조이다. 그처럼 민담은 인류의 원형적 의식에 맞닿아 있다. 이씨는 「영악한 여우」와 「미련한 곰」의 관계를 역전시켜 곰이 여우에게 꾀로 복수하게도 만들고, 생쥐가 인간의 신부가 된 사연, 지혜와 행운이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씨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근대소설은 근대사회의 지식과 문화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위대한 근대적 사유를 생산하였고, 스스로 가장 높은 근대정신을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포스트모던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근대소설은 그 생명력이 크게 약해지고 있다』고 전제한 이씨는 『혼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언제나 근원으로 되돌아가 에너지와 방향성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의 이야기문학이 에너지를 공급받고 새로운 방향성을 암시받을 수 있는 근원은 결국 민담과 같은 옛날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정씨의 「문명의 배꼽」(문학과지성사 발행)은 컴퓨터, 영화전문 잡지에 최근 5년여동안 쓴 짤막한 컬럼들을 모은 책이다. 이씨가 옛날이야기에서 새 길을 찾고 있다면 정씨는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는 새로운 문명을 정면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려 한다.

그가 한국문화와 문학에 도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는 현상들은 이미지문화의 쇄도, 정보화사회로의 돌입, 신세대의 부상, 문화산업의 창궐이다. 문단에 드문 「컴퓨터도사」로 알려진 정씨는 컴퓨터로 글을 써보면서 신세대의 「컴퓨터식 사유」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는 자신이 「문학의 크메르루즈」라고 부르는 신세대문학과, 알맹이없이 「새로움의 유령들이 횡행하는」 문화를 깊이있게 비판하면서, 컴퓨터로 글을 쓰기 이전의 작가들의 「가운뎃손가락에 박혀 있던 콩알만한 군살」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문학의 본질은 이것이다. 『아마도 내가 여전히 문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 투명한 기억에 터전을 빌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문학,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지면서 영악한 문화산업가들에 의해 희귀한 기념물로 점점 특산화되어가고 있는 문학이야말로 문명의 방향에 반성과 성찰의 딴지를 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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