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5대 재벌그룹이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함에 따라 이제 공은 금융기관으로 넘어갔다. 『재벌들의 구조조정 이행을 3개월마다 직접 점검하겠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행여부를 감독하고 촉구할 곳은 은행등 금융기관이다. 재벌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조달 및 부실계열사 추가 퇴출 등 계열사 감축, 출자전환기업 경영감시, 상호지보 해소등 재벌개혁의 핵심사항들은 결국 은행의 몫이다.김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했듯이 정부가 재벌에 대해 콩놔라 팥놔라 식으로 계속 개입할 수는 없다. 이번 합의는 말 그대로 합의에 불과하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재벌 구조조정은 바로 금융기관을 통한 개혁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정치논리가 앞섰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현 상황은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정부가 주도하기는 어렵다. 은행이 제대로의 기능을 못한다고 해서 정부가 뒤에서 조정하면 관치금융을 넘어 관치경제로 접어들고, 개혁은 물거품이 될 우려마저 있다.
문제는 은행이 과연 재벌개혁을 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5대 그룹은 264개 계열사를 130여개로 줄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의 부실채권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또 그룹별 1∼2개 워크아웃 및 빅딜대상 업체의 여신을 출자전환해 줘야 되는데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 당장은 이자를 못받는 무수익자산이 된다. 그렇지않아도 부실채권에 시달리는 금융기관이 어떻게 이런 추가부담을 짊어지면서 재벌개혁을 이끌 수 있을 것인가가 이번 구조조정의 성공을 가름하는 관건이다.
현재 우리 금융기관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에게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금융 구조조정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벌개혁의 밑그림은 그려졌다. 이제는 금융 차례다. 금융과 실물은 수레의 두바퀴와 같아 한쪽이 삐끗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정부는 재벌 대주주에 대해 책임있는 경영을 요구했듯이 은행의 대주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은행이 재벌 경영을 감시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도록 금융 구조조정을 완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은행등 금융기관은 인원정리나 통폐합등 하드부문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끝났으므로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재벌개혁을 성공시키고,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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