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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의 빛으로 거듭나라/金淇森 조선대 총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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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의 빛으로 거듭나라/金淇森 조선대 총장(특별기고)

입력
1998.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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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문제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계종이 둘로 갈라져 서로 몸싸움을 벌이고 세속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폭력을 연출한 것이다. 언론의 지적대로, 정치승려들의 패권다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경호용역 회사직원, 물대포까지 동원한 편싸움을 보고 가슴이 아플 뿐이다. 불교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안겨준 상처와 실망감, 허탈감은 무엇으로도 보상하기 어려울 것이다.그 사건 직후, KBS 일요스폐셜 「만행(卍行)」에서 소개한 미국인 스님(법명 현각·玄覺)의 수도기(修道記)는 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예일대 출신으로 미국 최고 엘리트인 그는 동양정신의 발원인 불교에서 생의 진리인 「보리」를 찾아 한국까지 온 진지한 구도자세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벽안의 그에게 싸움질하는 한국불교가 어떻게 비쳐졌을까. 문득 궁금하면서도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한국의 불교는 『따뜻한 할머니의 품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흔히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단어로는 「호국불교」를 떠올리는데, 그는 매우 평범하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정감어린 말로 한국불교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다. 할머니라는 단어에는 우리의 체험적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 배를 쓰다듬어 낫게 해주시던 약손, 철부지인 손자손녀편에 항상 서 주시던 보호자며 위로자로서의 넉넉한 이미지다.

한국불교는 국가적 위기 때는 나라를 구하는 자비의 깃발을 들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승려들이 목숨을 바쳤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일제 때도 그랬다. 조국을 지탱해준 정신적 지주였다. 때로는 혼탁의 길을 걸었고, 그래서 조선조는 「척불숭유(斥佛崇儒)」정책을 폈지만 그럴 때마다 자정의 수레바퀴를 돌려 제 위치를 지켰던 것이다. 그러면서 중생들을 할머니의 품처럼 안아 주어서 마음의 고향이 되고 의지처가 되기도 했다.

동양의 사유에는 두 개의 큰 줄기가 있다. 하나는 시비, 선악, 생사를 분명하게 가리자는 입장으로서 분별의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분별을 떠나자는 입장으로서 초탈의 원칙인 것이다. 후자인 초탈지향의 사유는 모든 분별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좀더 자유롭게 하려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승려들의 수도 목적도 여기에 있다. 번민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우리들이 산사(山寺)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 물신주의(物神主義)가 팽배한 시대 조류속에서 인간성의 황폐화, 정신세계의 공동화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중생들의 공허한 내면세계를 채우기 위해서는 불자들의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불자는 모름지기 급변하는 시대, 방황하는 시대를 이끌어 가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한다. 격조 높은 가르침, 촌철살인의 잠언, 미래의 비전을 법어로써 들려주는 큰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혼돈의 가치관 속에서 참된 진리의 빛을 사람들은 원하고 있다. 어둡고 어려운 시대지만, 절망의 끝에도 반드시 길이 있다는 진리를 국민들에게 심어줄 때 한국불교는 제 몫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충분히 깨우칠 수 있는 총명과 영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교훈도 없고, 세기말적인 작태나 보인다면 그것은 불교지도자와 불교인들의 책임이다.

유사 이래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라는 경제적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 때불교계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품에 안아 주는 할머니의 역할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할머니께서 손자손녀들을 잘 보살펴서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했듯이, 한국불교도 우리나라가 국제무대를 선도해 갈 수 있도록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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