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오랜 산고 끝에 7일 마련한 「5대그룹 구조조정추진 합의문」은 그대로 실천된다면 우리 경제사에 큰 획을 긋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합의문이 기업 구조조정을 넘어 지난 40년간 한국경제의 성격과 방향을 좌우해온 재벌체제를 사실상 해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5대그룹은 계열사를 3∼5개 주력업종만 남긴뒤 나머지는 대폭 정리하고,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고, 부채비율을 내년말까지 200%로 축소하는 한편 7개업종의 사업구조조정 계획은 연말까지 확정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재벌의 병폐로 지목돼온 선단식 체제, 공생공멸의 공동운명체 구조, 빚더미 경영등은 상당부문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융 노동등 4대 개혁과제중 가장 부진했던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 경제회생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대외신인도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합의문은 특히 정권초기 정치적인 구호나 재벌 길들이기 차원에서 반짝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과거 재벌개혁과 달리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제시되고, 주거래은행을 통해 이행을 감독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숱한 난제들을 헤치고 합의문을 도출해낸 정부와 재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합의문은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합의문은 올해초 재벌총수와 김대중 대통령이 합의한 재벌개혁 5대원칙에서 크게 진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5대재벌들이 계열사를 늘리는 등 약속을 전혀 이행하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구체적인 합의문을 작성하게 된만큼 앞으로도 합의문이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은 더이상 용납될 수 없어 계열사를 그룹당 10개정도로 줄여야 한다. 또 그룹 스스로가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조조정에 따른 정부의 지원은 최소화하여야 한다. 재벌개혁은 과거 정권에서도 시도됐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유야무야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합의문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주채권은행이 이행상황을 공시토록 하는등 보완장치들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감독관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또 앞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실업자 양산, 구조조정 비용부담, 은행과 재벌간 손실 분담원칙등 난제들이 산적해 구조조정이 과연 순항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고 안심할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로 더욱 배전의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건설·종합상사처럼 그 부실정도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업종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 5대재벌들도 과거 압축성장시대의 구틀을 벗어 던지고 과감한 자기혁신을 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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