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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더론 잘못됐다/金鎭炫 서울시립대 총장(火曜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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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더론 잘못됐다/金鎭炫 서울시립대 총장(火曜世評)

입력
1998.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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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죽은 날은 1889년 7월31일. 이 날은 또한 미국의 승리로 끝난 미국­스페인전쟁 종전일이기도 하다. 비스마르크는 바로 19세기와 더불어 그의 명이 끝날 무렵 「다음 세기에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영어를 쓰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20세기의 가장 큰 두 전쟁은 미국과 영국의 질서로 끝났다. 비스마르크가 죽은 해 장교로 임관, 인도에 출정한 처칠은 만년에 「영어사용 국민들 역사」를 썼고 영어사용 국가연방을 구상하기도 했다. 유럽의 자손들중에 20세기에 가장 컸던 나라가 영어쓰는 미국이었다는 사실로 해서 독일은 자신의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내내 영어 세력에 질 수밖에 없었다.김종필(金鍾泌) 총리가 지난달 30일 규슈(九州)대학에서 「일본말」로 명예박사수여답사를 했다. 한국총리가 일본과의 「공식」석상에서 일본말로 식사(式辭)를 한 최초의 기록이다. 게다가 똑떨어지는 말로 일본이 아시아의 리더가 돼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맹랑한 일이다. 같은 날 일본방문을 마친 장쩌민(江澤民) 중국주석은 떠나는 순간까지 일본의 과거사 외면을 질타하고 있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패전 50주년이었던 95년이 아니라 98년이 「전후」(戰後)를 청산하는 해로 기록될 법하다. 중국보다 더 대일 증오심이 강한 한국의 대통령·총리로부터 좋은 소리, 심지어 아시아의 리더가 돼달라는 공식기록의 말을 들었고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한국에서 광범위한 반미(反美)감정의 상승을 바라보고 일본 엔(円)의 힘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는 영어쓰는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비영어 아시아권이 갈라져 모처럼 일본에 기쁨을 안겨 주었다. 아마도 일본 우익에게는 김총리의 일본말 연설이 98년 10대뉴스중 1위를 차지 할 것이다.

풀어야 할 의문이 많다. 「사견」이라거나 「혼선은 없다」는 정부 해명은 너무 비겁하다. 정부로서 청와대 외무부는 사전에 김총리 연설을 조율했는지, AMF(아시아통화기금)창설을 강조하다 옆 길로 간 것인지, 아니면 2000년 일본 황실의 서울방문을 위한 희생타인지, AMF문제로 미국 중국과 협의하면서 하는 발언인지, 미국 중국에 미칠 영향은 어느 만큼 고려하고 하는 것인지, 앞으로 우리 외교는 언제부터 각급 국제회의에서 일본리더론을 기초로 전개할 것인지, 김대통령 방일 한달뒤 김총리가 일본에서 일본리더론을 공식화하는 것은 안팎 누구 눈으로도 한국외교정책의 중대한 수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주한미군과 대미관계, 우리 무역흑자의 70%를 차지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으로서의 대중국관계 같은 외교적 분석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21세기 중반까지의 눈으로 볼 때 세계중심은 오늘의 선진국이 아니며 중국 동남아 인도 인도양제국 쪽으로 중력이 이동할 것을 확실히 단정할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도 문명충돌적 현상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협력체가 없는 동북아의 협력강화를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리더론은 크게 잘못됐다. 일본의 폐쇄주의 국수주의가 바로 일본 약화요인이며 동북아협력 방해요소이다. 일본의 인구는 노령화·소자화(小子化)가 급격히 진행되어 2050년에 9,000만, 2100년 6,000만으로 줄어든다. 금방 지는 해는 아니나 떠오르는 태양은 분명 아니다.

나는 앞으로 21세기 준비를 위하여 중국 인도와 인도양제국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체제를 당장이라도 국책적으로 갖추기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장기전략으로 이런 일을 추진해야 한다. 한일친선협회장 자격으로도 신중해야 할 말을 총리가 일본 땅에서 중국과 대결하듯이 일본말로 주장하는 것은 단기든 장기든 국가이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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