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시작됐던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고(故)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보인 대일 강경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일본에서 처음 공개됐다.7일 발매되는 월간 「디스 이스 요미우리」 1월호가 「이승만의 밀서」라는 특집으로 공개한 16점의 자료는 일본 정계의 막후실력자로 활약했던 고(故) 야쓰기 가즈오(矢次一夫)가 남긴 것이다. 53년 제3차 한일회담이 「구보타 망언」으로 결렬된 이후 4차회담을 앞둔 56∼58년의 서한과 메모 등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일본측과 밀서를 주고 받으며 두차례나 이시이 미쓰지로(石井光次郞) 전 부총리의 방한 요청을 거부했다. 당시 이시이 부총리는 56년 5월과 57년 4월 두차례 보낸 밀서에서 한국을 방문해 성의를 가지고 협상재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57년 3월에 보낸 영문 밀서에서 어업문제나 청구권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일본이 중국과 소련은 물론 북한과도 우호관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일본을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이와 관련, 『공산주의 국가와의 외교·경제관계를 단절하면 전세계 자유 우호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일본의 공산국과의 관계 단절을 국교정상화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들었다.
이밖에 야쓰기 가즈오와 「서울 종로구 궁정동 82번지」가 주소였던 김사목(金思牧)씨의 친분을 바탕으로 한 「김·야쓰기 통로」가 당시 양국 정부의 중요한 통로였던 사실도 드러났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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