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총풍·反昌기류 계속 고난의 시험대/일관된 對與 강경책 선명·투쟁성은 확보/취약한 기반 정비해 리더십 창출 해내야8일이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8·31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취임한 지 꼭 100일이 된다. 하지만 이날은 이총재에게 수많은 회한과 쓰라림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취임당시의 환호와 감격은 간데없고 말그대로 고난과 역경의 기억으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취임 당일에 터진 「세풍(稅風)사건」에 이은 「총풍(銃風)사건」, 그리고 최대 동맹군이던 김윤환(金潤煥) 전 부총재의 이탈과 비주류의 「반(反)이회창 세력화」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이총재의 「생명력」은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랐다. 때문에 그의 최대 정치적 자산인 「대쪽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상처를 입었고, 명실상부한 당내 「이회창 체제」의 착근도 아직 요원한 듯 하다. 『대선패배 후 한동안은 관망기를 가졌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전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뒤늦은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 과정에서 이총재가 얻은 것이 있다면 야당지도자의 선명성과 투쟁성을 체득했다는 정도다. 40일간의 장외투쟁 등 일관된 대여(對與) 강경노선으로 「이회창=반 DJ세력의 구심점」이라는 등식을 여론에 심었다는 것이다.
이총재의 앞날도 그에 대한 여권의 자리매김, 당내 비주류의 기세 등에 비추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 이총재의 현실적 자산은 DJ와 YS 등 과거 야당총재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 확실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자파 인맥과 조직을 관리할 자금력은 아예 전무한 상태다. 게다가 군사정권 시절 야당이 누렸던 「정통성」이나 「차별성」도 문민정부 이래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어 흡인력있는 「대안세력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그만큼 까다롭다.
결국 이총재가 당안팎의 난관을 돌파하고 「차기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앞세워 「이회창식 리더십」을 창출해내는 길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총재측도 최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내부 체제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총재는 지금 우리 정치사상 미증유의 「정치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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