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작지만 큰사랑 필요한때”/자선냄비 한국등장 70년/통장 등 모금방법 다양화/내년엔 인터넷성금도 가능구세군 자선냄비가 4일 거리에 등장했다. 올해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한국에 등장한지 70년,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지 90년 되는 해이다. 정겨운 종소리로 이웃사랑을 일깨워온 구세군은 24일까지 전국 70개 지역에 설치된 180개의 자선냄비를 통해 정성을 모은다. 이성덕(李聖悳·63) 한국구세군 사령관을 만나 구세군의 활동등을 알아보았다.
자선냄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 12월15일 영국인 조셉 비아 한국구세군사령관이 서울 명동에 설치한 이래 불우이웃돕기, 세밑 풍경의 상징이 됐습니다.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에 바탕해 이웃돕기를 강조하면서 「모두 해야 할 일」「내가 할 일」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올해 모금목표는 얼마입니까.
『작년에는 IMF한파에도 불구하고 96년보다 1억4,000만원 늘어난 13억원이 걷혔습니다. 올해 목표액도 13억원입니다. 연인원 3만여명의 자원봉사자와 군우(軍友·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모금에 나섭니다. 성금은 영세민 돕기에 30%, 사회복지시설 지원에 30%, 재난을 당한 이웃돕기에 30%, 심장병환자 수술비지원에 10%를 씁니다. 지금은 작지만 위대한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령관님은 자선냄비에 성금을 얼마나 내셨습니까. 그리고 기억에 오래 남는 성금기탁자가 있습니까.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나선 13세때부터 매년 성금을 냈습니다. 모금을 하려면 성금을 먼저 내야 하는 게 규칙입니다. 액수는 형편없을 겁니다. 자선냄비 모금이 끝난 지난 해 12월27일의 일입니다. 노부부가 집무실을 찾아와 「결혼 34주년 해외여행을 가려다 IMF사태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선냄비에 몇 푼 넣었는데 손이 부끄러워 여행비를 가져왔다」며 봉투에 든 수표를 내놓았습니다. 성금통장에 입금하고 온 비서가 내미는 영수증을 보니 1,000만원이라는 거액이더군요』
한국구세군의 역사, 개전(開戰·전도) 90년의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
『한국구세군은 한국사회의 미덕인 「서로 돕는 마음」을 북돋우면서 「교회의 교회」 「교회의 거울」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윌리암 부드목사에 의해 사회구호사업을 기치로 창립된 개신교 교회로서 우리나라에는 1908년 10월 영국인 호가드사관이 들여왔습니다. 1908년 11월 첫 영문(營門·교회)인 서울제일영문(현 서대문영문)이 당주동에 문을 연 이래 98년 현재 전국에 240개 영문, 66개 사회사업전문시설, 152개 지역사회봉사시설이 있습니다. 개전 당시 1,000여명이었던 군우는 12만여명으로 늘었습니다』
구세군의 기본정신은 무엇입니까.
『「복음과 함께 빵을 주자」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머물지 않고 전인(全人)구원을 목표로 합니다.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도시빈민을 돕기 위해 구세군 군우인 조셉 맥피가 자선냄비를 착안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금방법을 다양화할 계획은 없습니까.
『96년 12월 「자선냄비통장」을 내놓았습니다. 한일은행은 이 통장에 저금한 사람의 이자수익 2%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세군에 성금(지난 해 3,000만원)으로 냅니다. 12월부터 아멕스카드 회원은 신용카드를 이용해, 내년 1월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성금을 낼 수 있습니다』<서사봉 기자>서사봉>
□약력
▲1935년 충북 영동 출생 ▲57년 중앙신학교 신과 졸업 ▲63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사관 임관 ▲66년 서울 저동영문 담임사관 ▲82년 서울 서대문영문 담임사관 ▲89년 전라지방장관, 런던 구세군사관대학 수료 ▲92년 충청지방장관 ▲94년 한국구세군 서기장관 ▲95년 한국구세군 제20대 사령관 ▲9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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