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0년째 구세군 자선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선 조명화(趙明和·79)옹.조옹은 구세군 사관도 아니면서 48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올해 모금이 시작된 4일은 국내 자선냄비의 역사가 70년이 되는 날.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모금 시종식」에 참가한 조옹의 머리속에는 자선냄비와 함께한 반세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조옹은 『해방직후만 하더라도 자선냄비 앞에는 돈 대신 곡물이 든 포대자루나 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모인 곡물을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등에게 배달하는 것도 조옹의 일과였다.
1919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아홉살때 구세군 주일학교에서 글을 배우면서 구세군과 인연을 맺은 조옹의 자선냄비 인생은 29세 되던 48년 서울로 내려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건설업을 하던 그는 구세군복을 갈아입고 어린 세아들의 손을 잡고 영등포역앞에서 『80만 서울 동포여러분, 이웃을 도웁시다』고 외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옹이 고령에도 불구 활동을 계속하게 된 계기는 70년대 초 서울역 부근에서 만난 한 지게꾼 때문. 하루종일 짐을 옮겨주며 품삯을 받던 50대 지게꾼이 일당을 모두 자선냄비에 넣었다. 너무 힘들게 번 돈이라 절반을 되돌려주려 했으나 지게꾼은 『평생 남에게 신세만 지다 이렇게 사람구실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 때 조옹은 힘이 남아있는 동안은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5년전부터 노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12월이면 어김없이 세아들과 함께 단 며칠이라도 자선냄비 앞에 서왔다.
조옹은 『자선냄비가 구세군의 모금함이 된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는 푼돈이 진짜 정성이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IMF라도 모금의 손길은 더욱 많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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